[건강] '아이 病 엄마 有罪'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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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원병(母原病)을 아십니까'. 어머니의 잘못된 육아로 자녀에게 생기는 모원병이 관심을 끌고 있다. 모원병은 일본의 소아과 의사인 규토쿠 시게모리 박사가 1990년대 초 처음 주창한 용어.

나고야의대를 졸업하고 아이치의대 교수를 지낸 규토쿠 박사는 일본 어린이들이 앓고 있는 질환의 60%가 모원병이라고 지적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종류도 감기부터 천식.아토피.만성복통.열성 경련.야뇨증까지 다양하다. 91년 그가 쓴 책 '모원병'은 1백만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모원병이란=감기는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질환, 천식은 과민한 체질을 타고난 알레르기 질환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모원병은 바이러스가 없어도 감기에 걸리며, 알레르기 체질이 아니라도 천식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특별한 원인이 없어 의사들을 갸우뚱하게 만드는 특이한 증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모원병으로 인한 감기는 일년 내내 계절과 상관없이 발생한다. 기침 등 증상도 낮보다 밤에 심하다. 증세는 심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기침을 해 일년 내내 감기를 달고 다닌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천식 역시 약물로 잘 조절되지 않고 알레르기 원인 물질을 줄여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다. 규토쿠 박사는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으로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자율신경 실조증에 걸려 모원병 증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0~3세 무렵 뇌에서 주로 형성되는 자율신경이 불안정한 양육환경에 놓이면 교란이 생기고, 이로 인해 감기나 천식 등 자녀의 몸 속에 잠재해 있던 질병이 악화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양육환경인가=너무 얌전한 아기를 원하는 부모의 태도가 첫손으로 꼽힌다.

맞벌이에 시달리는 어머니일수록 아기가 울고 보채지 않길 은연중 바란다. 젖꼭지를 물리거나 무조건 재우려고 한다. 그러나 아기의 뇌는 어릴 때 많이 보고 들으며 울거나 웃는 등 활발하게 반응할수록 잘 자란다. 아기가 얌전하면 오히려 비정상적이란 뜻이다.

어머니의 피부와 아기의 피부를 접촉하는 스킨십도 중요하다. 촉각을 통한 자극이 부족할수록 면역력도 떨어지며 집먼지진드기 등에 과민한 알레르기 체질이 된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환경이나 모유 대신 우유를 먹이는 것도 아토피나 알레르기 체질을 유발한다.

결론적으로 남의 손에 맡기는 등 아기를 편하게 키우고 아기의 입장보다 자신이 만족하려고 애쓰는 어머니일수록 모원병이 잘 생긴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첫째, 아기는 아기답게 키워야한다. 아기에게 대변이나 소변, 주위의 먼지 등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이물질에 적절히 접촉할수록 체질이 과민해지지 않아 천식이나 비염.아토피 등 알레르기 질환이 생기지 않는다. 적당히 더러운 환경에 관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아기의 울음을 긍정적으로 받아줘야 한다. 자주 운다고 귀찮아하면 비록 표현은 못하지만 아기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아기의 울음은 무엇인가. 불편해서 어머니의 배려와 사랑을 원하는 호소이기 때문이다. 울수록 애정과 관심을 갖고 안아주는 등 스킨십에 충실해야한다.

셋째, 아기들에게 아플 권리를 줘야한다. 아기에게 기침이나 고열.설사 등 가벼운 증세가 나타나도 안절부절못하는 어머니가 많다.

그러나 기침이나 설사는 호흡기와 소화기 속의 해로운 물질을 배출하고 고열은 질병을 이겨내려고 신진대사를 증진시키기 위해 인체가 동원하는 자연방어 현상이다.

이를 무조건 약물로 억누르면 근본 치료가 되지 못하고 질질 끄는 만성질환으로 악화한다.

넷째, 강박적 깔끔함을 어린이에게 강요해선 안된다. 야뇨증이 대표적 사례다.

어린이들은 항이뇨호르몬 분비가 적어 소변을 잘 참지 못한다. 그런데 밤에 소변을 지린다고 어머니가 야단 치면 방광이 비정상적으로 과민해진다.

이 경우 방광에 소변이 조금만 차도 요의를 느끼게 되며, 이 때문에 수시로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한다.

이불이나 바지에 소변을 지리더라도 관대하게 받아주고 꾸중 대신 기다리면 좋아진다고 격려해야 한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포천중문의대 분당차병원 소아과 이준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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