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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 김보성, 졌지만 의리는 살아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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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곤도와의 경기에서 레프트 훅을 날리고 있는 배우 김보성. 그는 “나눔의 의리를 실천하기 위해 격투기에 도전했다”며 “나의 도전을 보면서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쏟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양광삼 기자]

곤도와의 경기에서 레프트 훅을 날리고 있는 배우 김보성. 그는 “나눔의 의리를 실천하기 위해 격투기에 도전했다”며 “나의 도전을 보면서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쏟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양광삼 기자]

졌지만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쉰 살의 영화배우 김보성(압구정짐)은 지난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35 웰터급(77㎏) 경기에서 일본의 곤도 데쓰오(48)와 대결했다. 그러나 1라운드 종반 오른쪽 눈 부위에 부상을 당하면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50세에 도전한 격투기 로드FC
왼쪽 눈 장애 아랑곳 않고 타격전
오른눈 부상 1R 2분35초 만에 석패
팬들 “의리” 외쳐…“안와골절 수술”

김보성은 이날 영화 록키의 배경음악에 맞춰 날렵하게 등장했다. “주인공 록키 발보아처럼 지더라도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했던 김보성은 오른 주먹을 들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링 위에선 팬들에게 큰절을 하는 여유도 보였다.

곤도의 일방적인 우세가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경기 초반은 치열하게 진행됐다. 김보성은 시작과 동시에 과감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유도 선수 출신인 곤도와 접근전을 펼치면 승산이 없다는 계산을 한 김보성은 거리를 두고 타격전을 펼쳤다. 하지만 4년간 17차례 공식 경기를 치른 곤도는 베테랑다웠다. 경기 시작 후 30초 만에 김보성을 넘어뜨렸다. 주먹으로 내려치며 김보성을 몰아붙인 뒤 팔을 꺾는 암바를 시도해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김보성은 암바를 힘으로 풀어낸 뒤 레프트 훅을 곤도에게 적중시켰다.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쏟아졌다. 김보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 무조건 암바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왼쪽 눈에 장애가 있는 김보성(오른쪽)은 오른쪽 눈 부위를 맞는 바람에 경기를 포기했다. [사진 양광삼 기자]

왼쪽 눈에 장애가 있는 김보성(오른쪽)은 오른쪽 눈 부위를 맞는 바람에 경기를 포기했다. [사진 양광삼 기자]

그러나 승부는 한순간에 결정났다. 곤도가 날린 오른손 펀치가 김보성의 오른쪽 눈에 맞았다. 정타로 맞진 않았지만 김보성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인을 보냈다. 심판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1라운드 2분35초 만이었다.

장애(6등급)가 있는 왼쪽 눈이 김보성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는 젊은 시절 사고를 당해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다. 김보성은 대회 출전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간청한 끝에 간신히 격투기 출전 허락을 받았다. 반드시 오른눈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오른쪽 눈을 가격당하자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패배가 결정되자 김보성은 침통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채 한참 동안 링을 떠나지 못했다. 경기장을 찾은 배우 안재욱과 심형탁, 가수 뮤지, 개그맨 윤형빈 등 연예인 동료들이 그를 위로했다. 김보성은 “죄송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김보성은 “오른쪽 눈을 맞는 바람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실명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는 격투기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로드FC 관계자는 이튿날인 11일 “안와(두개골 속 눈이 들어가는 공간)골절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받아야 할 형편”이라고 밝혔다.

김보성이 50세에 격투기에 도전한 건 나누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김보성과 로드FC는 대회 입장수익과 그의 대전료를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가발을 만드는 데 보태달라”며 짧게 머리를 자른 뒤 모발도 기부했다. 김보성은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어린이들과 부모님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런 김보성의 진심을 아는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리’와 ‘김보성’을 연호했다. 김보성도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의리!” 

글=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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