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서 20%로, 이자율 상한 또 내려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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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대부업의 이자율 상한을 연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대출 계약 기간 동안 채무자가 부담하는 이자의 합계가 원금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자 함.’

대부업법 개정안 발의
국회 “과도한 이자 민생에 악영향”
업계 “저신용자, 사금융 몰릴 우려”

“공모 회사채 발행, 은행서 차입 허용
조달금리 8%서 5%대로 낮춰야”

지난 5일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대부업법 개정안의 제안 내용이다. 지난 3월 법정 최고금리를 연 34.9%에서 27.9%로 낮춘 지 9개월 만에 또다시 법정 최고금리 인하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고금리 인하론이 확산되지 않을지 대부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제 의원 측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과도한 이자부담은 민생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현행법의 대부업 이자율 상한 연 27.9%는 외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프랑스는 은행이 고시한 평균금리의 1.33배, 일본은 20%를 이자 상한으로 정하고 있어 한국보다 낮다는 지적이다. 또 높은 이자율 때문에 몇 년 간 빚을 갚아도 여전히 채무가 남아 있는 등 폐해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부업계는 일본을 제외한 주요국은 최고금리 규제 자체가 없거나(미국·독일·중국·대만), 이자율 상한이 한국보다 높다고 반박한다. 저소득층(연소득 3만 싱가포르달러 이하·2463만원)엔 최고금리를 20%로 제한했던 싱가포르는 지난해 10월 법 개정으로 상한선을 48%로 높였다. 프랑스는 명목 최고금리가 21.32%이지만 별도로 받는 수수료 등을 합치면 실질 최고 이자율은 29.3%가 된다.

대부업계는 지금보다 금리를 더 내리면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문턱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편다. 대부업체에서 탈락한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빠지게 될 거란 주장이다. 이재선 한국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지금도 상위 10개사 정도만 신용대출을 하는데 상한금리가 더 떨어지면 상당수가 신용대출 영업을 중단하거나 심사를 강화해서 저신용자를 배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부업 신용대출 이용자 중 저신용자의 수와 비중은 모두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75개 대부업체 고객 중 7~10등급자는 94만 명이었지만 점차 줄어서 지난 9월 말엔 87만8000명에 그쳤다. 같은 기간 4~6등급의 중신용 고객 수가 33만 명에서 36만 명으로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올 3월 최고금리 인하 이후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심사가 깐깐해지면서 지난해 20%대였던 대출 승인율은 14.2%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우량등급 고객은 금리 부담이 줄어들자 대부업체 이용을 늘리는 추세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최고금리를 더 내리면 그 혜택이 저소득층이 아닌 상환능력이 충분한 대출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환능력 있는데 급전이 필요해서 단기에 고금리 대출을 받는 경우까지 금리인하 혜택을 줄 필요는 없다”면서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해서는 금리를 낮춰서 빚을 내게 하기보다는 복지제도를 확충해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저신용자의 제도권 대출 탈락을 최소화하면서도 이자율을 낮추려면 대부업의 제도 변화가 따라줘야 한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일본 대부업체 조달금리는 5% 이하로 국내 대부업체(8~9%)보다 낮기 때문에 20% 이자율에도 견딜 수 있다”며 “일본처럼 대부업체가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차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업체가 적정 마진을 내면서 영업할 만한 여건을 갖추면서 이자율을 낮추자는 뜻이다. 현재 국내 대부업체는 규제 때문에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다만 국내 정서상 공공기능이 강한 은행이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주는 데 대한 반감이 큰 상황이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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