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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기자 4명이 직접 풀어본 수능 국어 “제 점수는요?”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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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나왔다. 가채점으로 이미 충분히 멘붕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받아든 성적표는 안 그래도 추운 겨울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들지도 모른다. 물론 가채점보다 잘 나와 '개이득'인 수험생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꼭 그런 사람이 많길 바란다.

수능 만점자 인터뷰, 대입 전략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TONG은 거기에 맞추지 않고 우리만의 공감 기사(라고 쓰고 '본격 기자 생고생기'라고 읽는다)를 준비했다. ‘공부의 신’ 강성태는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매년 수능을 본다고 한다. 학생들을 대변하고 학생기자와 함께 호흡하며 일하는 TONG 기자들이야말로 수능시험에 응시하는 고통 정도는 느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 기자는 응시하지 않았다. 감독관은 하나 있어야 하니까.(궁색)

모두 현업으로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엄선해 단 네 명에게만 소중한 기회를 안겨줬다. 시간 관계상 한 과목만 보기로 했는데 바로 2017 수능 당락을 가를 최대 변수로 꼽힌 국어영역이다. 불시에 치러진 시험이기에 다들 공부는 1도 하지 않은 상태. 기자니까 국어는 잘할 거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국어를 선택했다. (국어는 무슨 말인지 읽을 수는 있을테니… 수학 생각하면 아찔)

아무것도 모르고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은 각자 왕년의 시험 에피소드를 신나게 얘기했다. 우리나라의 변덕스럽게 매번 바뀌는 입시제도는 유명하지만 네 명이 응시했던 시험만 들여다봐도 모두 달랐다. 교육부는 정말 수험생들을 모르모트로 생각하는 게 확실한가 보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르모트가 되어 수험생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고통에 동참한 네 명의 수험생들을 소개한다.

수험번호 1700-0001 박정* 1991학년도 학력고사 응시하나 불수학의 여파로 떨어지고 92학년도 학력고사 응시 후 92학번 서울대 사회학과에 합격함. 학력고사 끝물 세대. 수능을 본적도 없다. 이번이 인생 최초의 수능시험 도전.
(참고로 이 시절엔 선지원 후시험. 대학과 과를 먼저 지원하고 해당 대학교 강의실에서 학력고사를 봤음. 사지선다 학력고사 시험만으로 대한민국 수험생을 1등부터 꼴등까지 쫙~ 줄 세우는 위력을 보여줬음)

수험번호 1700-0002 이경* 1995·1996학년 수능시험 응시. 수능과 본고사에 내신까지 3종을 반영하는 '마의 트라이앵글'이라는 극악무도한 대입제도를 만났던 세대. 1995년 수능시험 180점 만점에 176점을 맞고도 본고사를 망쳐 재수 끝에 96학번으로 서울대 신문학과에 합격함. (이때는 수능보다 변별력 높은 본고사가 중요했음. 97학년도부터 본고사는 폐지됨.) 시험 보기 전 "수능은 (본고사에 비하면) 쉬웠다"는 망언을 했지만 곧 후회하게 되었으니…

수험번호 1700-0003 김재* 2010학년 수능을 치고 정시 10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함. 당시 언어 1등급을 받았음. 비교적 수능을 본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수능에 대한 기억은 1도 남아있지 않음. 이번 수능 국어영역 문제 답이 4번이 많았다는 건 어디서 듣고 왔는지 4번으로 다 찍겠다고 선전포고.

수험번호 1700-0004 이다* 네 명의 수험생 중 가장 최근인 2011학년 수능을 보고 11학번으로 국립대학에 입학함. (입학사정관제로 들어갔는데 이럴 경우 최저등급은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시 언어 2등급을 받음. 계속 샤프심이 부러지는 불량 '수능샤프'가 지급됐던 2011학년 수능의 주인공.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샤프를 부숴버렸다고. (수능에 개인 샤프를 허용하지 않은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러닝타임 80분, 장르는 호러?

[자료사진=중앙포토]

[자료사진=중앙포토]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국어 영역 시험을 실제로 봐야 한다는 얘기에 멘붕 대잔치,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졌다.


“말도 안 돼!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됐어!”
“아까 수능 쉬웠다고 헛소리했는데…”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너무나 공감이 가고 심장이 찌릿찌릿.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눈을 찔끔 감고 강행할 수밖에 없다.

“다 잘 하실 거예요.”

영혼 없는 우쭈쭈 멘트를 던졌지만 실제로 이들이 다 잘 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줄 테니…

[사진=양리혜 기자]

[사진=양리혜 기자]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어느새 다들 운명을 받아들였다. "미리 알았으면 공부를 좀 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는 사람,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보내주세요"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도 근무시간에 하는 일인 거죠. 끝나면 집에 보내줄게요…)

실제 수험생들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으로 시험을 보기 위해 컴퓨터용 사인펜, OMR카드, 분홍색 샤프 모두 준비했다. 컨디션에 따라 시험이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이들의 컨디션도 술이 덜 깬 사람,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 모두 다양했다. 컨디션도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

[사진=양리혜 기자]

[사진=양리혜 기자]

시작! 시험 시간은 80분, 마킹 포함한 시간이니 모두 시간 안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험이 시작되고도 "이걸 정말 해야 해?"라고 소심한 반항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응답으로 대응했더니 점점 시험에 몰입했다.

네 명의 수험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차분하게 문제를 풀며, 뒤에 붙여놓은 영상 배경용 천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또 연신 흐르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고, 자세를 계속 바꿔가며 시험지 앞장을 보다가 이내 뒷장으로 넘겨 큰 점수를 노리더니 다시 중간쯤으로 되돌아오는 등 정신 산만한 응시자도 있었다.

2014학년도 수능시험부터 국어영역에서 듣기 평가 시험이 사라졌다. 듣기 평가는 비교적 난이도가 낮아서 그냥 가져가는 점수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마저 없어졌으니 쉬운 문제란 없는 걸까. 마인드컨트롤이 안 되는 모습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다 풀지 못할 수 있어 제일 뒷장의 어려운 문제부터 푸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 듯하다. 뒷장은 너무 어려운 것... 남의 일이니까 쉽게 얘기하는 것 같겠지만 팀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책상을 치며 마음으로 광광 울었다. (팀장님 보고 있나?)

시험 감독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발소리도 내면 안 되고, 정신은 멍~ 해지며 지루하고 졸리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다. 역시 돈 버는 건 어렵다. 하물며 돈도 안 받고 남이 시험 치는 것을 지켜보려니 죽을 맛이다.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새 끝을 향해 갔다.

"5분 남았습니다."


시간 조절 실패로 무려 5분을 남기고 마킹을 끝낸 응시자, 밀려서 잘못 마킹한 사람, 찍기에 돌입한 사람까지 실제 고사장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흡사하다. 역시 사람은 다 비슷한 법.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그들의 모습은 혼이 비정상 그 자체였다. 우선 대입시험을 본 지 20년이 넘은 두 40대 기자들은 "악몽이다. 이건 고문이다"라는 말로 시험 본 소감을 전했다. 이들의 울분 섞인 후기를 그대로 전달해본다.

(박정*) "지문이 이렇게 긴데 다 처음 보는 지문이야.(웃음) 지문을 다 읽고 풀면 시간이 모자라요. 부정의 부정문이 많이 나와요. 뭐가 아닌 것의 아닌 것은 이러니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집중이 안 돼요. 학력고사 땐 그냥 하나의 지문을 주면 거기에서 두 세 문제가 나왔어요. 근데 ‘가’에 문학이 나오면 ‘나’에 다른 설명문이 나와서 같이 연결되는 문제로 나오네요. 예전하고는 확연히 다른 것 같네요. 국어나 문학에 대한 시험이 아니고 논리학이나 약간 수학적 추리를 요하는 게 너무 많아요."

(이경*) "옛날에 어떻게 이런 시험을 한 시간도 아니고 하루 종일 봤지 싶네요. 지문도 문제도 길어서 정말 요령과 기술, 훈련이 필요한 시험인 것 같아요. 출제자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80분 동안 풀어보라고 시키고 싶어요.(웃음) 문제에서 낼 키워드들은 더 찾아보기 쉽게 표시해놓은 것을 보면 옛날 수능보다는 좀 친절해졌나 싶기도 한데... 하... 옛날에 어떻게 수능시험 봤는지 모르겠어요. 지문과 문제를 다 읽는 건 불가능해요. 이 속도를 맞추려면 진짜 EBS 교재에 나오는 지문을 달달달 외우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재*) "퇴근 시켜주세요~ 힘들어요. 문제 난이도는 제가 시험 쳤을 때랑 비슷한 것 같은데 공부를 한 게 없다 보니까 더 어렵게 느껴진 것 같아요. 뭔가 비문학과 문학을 합쳐놓은 그런 유형이 새로 생긴 것 같네요. 이런 시험을 예전에 봤다는 저 자신이 기특합니다."

(이다*) "술 먹고 싶네요. 지문이 길어서 가, 나, 나오는 것 찾는 것도 힘들어요. 10문제 정도 찍은 것 같아요. 예전엔 풀긴 다 풀었는데 오늘은 택도 없어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저는 한 마디로 수능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어렵다고 얘기해 준 문제가 있었으니..

어려운 문제 BEST 1. 보험

어려운 문제 BEST 2. 논리실증주의자

어려운 문제 BEST 3. 젖산

비문학이 잘못했네… 수험생 맴이 내 맴…

여러분 마음도 같을 거라 생각한다. 운명의 시간, 채점을 해야 한다. 두구두구두구... 가채점을 해본 후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니 괜히 이런 걸 시켜서 아픔을 준 것 같아 송구스러웠다. 박모 기자는 "이제 학생들이 입시 기사 쓰지 말라고 하는 거 아니냐, 너나 공부 잘하세요 하겠어요"라며 걱정 했고, 이모 기자는 "수험생 여러분 존경합니다. 어떻게 이 시험을 다 보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김모 기자는 "고등학교 2학년 파이팅! 예비고 3 파이팅!" 앞으로 가시밭길을 향해 걸어갈 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막내 이모 기자는 "대학 간 제가 용하네요"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점수는요?

이제 정확한 점수를 밝혀야 할 시간, 지금 점수 보고 울고 있을 당신들, 그만 눈물을 닦고 여길 보시라. 다 같은 맘인 거 안다. 우리 서로 위로해주며 이 시기를 극복하자.

교육과정평가원은 표준점수 등급컷만 공개하기에 원점수 등급컷을 확인하려면 각 입시 사이트로 찾아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확인 결과는 고만고만한 5~6등급. 이모 기자는 "네*버는 왜 5등급까지 밖에 안 보여주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점수로 어디 갈 수 있죠?" (이경* 기자)
"한강이요." (이다* 기자)

[사진=양리혜 기자]

[사진=양리혜 기자]

응시자명

원점수

등급

박정*

59점

6등급

이경*

63점

5등급

김재*

70점

5등급

이다*

53점

6등급

(원점수 등급컷=유웨이/진학사 참조)

수능은 넘나 대박인 시험이다. 이제 수험생들은 자신의 시험 결과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 단, 오늘 하루만은 아무 생각 말고 잠을 자도록 하자. 잠이 보약이니까.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영상=전민선 프리랜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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