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양사건 의문점 10문10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엄청난 쇼크를 준 범양상선 사건은 유례없이 신속한 속도로 결착점을 향해 국세청및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사건은 밝혀진 부조리, 범행의 규모면에서뿐 아니라 사건의 시말에서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 사건의 이해를 위해 의문점들을 중심으로 범양사건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박회장은 「오너」면서 왜 사이가 나쁜 한사장을 자르지 못했나.>
▲업무상 박회장을 자주 만났던 관계당국자나 개인적 친분을 가졌던 사람들은 두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는 한사장이 78년 사장이 된뒤 해운업계에서는 제1의 전문경영인으로 자타가 공인해 왔고, 그를 쫓아낼 경우 부실기업의 사주로서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우선 84년의 해운합리화조치로 막대한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게된 터에 경영자를 내쫓으면 회사돈을 빼돌리기 위한 것이란 오해를 낳게될뿐 아니라 제5공화국 출범이후 한사장의 행동반경이 상대적으로 박회장보다 넓어졌고 비호세력이 많아 문제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박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다음으로는 박회장의 거액외화유출이 모두 한사장을 통하거나 한사장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후유증이 두려웠을 것이란 관점이다. 유서의 「덫」은 바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박·한씨의 해외도피재산은 어떻게 되나.>
▲국내재산과는 달리 그들의 해외재산은 박회장 유족이나 한사장 본인의 동의없이는 회수되기가 힘들다.
현재 국세청이 파악하고 이자는 두사람의 해외재산은 박회장의 5백만달러어치와 한사장의 2백만달러어치등 모두 7백만달러어치인데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국제조세협약을 맺고는 있으나 이는 2중과세방지와 과세상 장벽제거등 정책적 측면만의 협조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의 개인재산 매각처분은 협조를 구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두사람의 가족들이 국내생활을 계속할 경우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결국 해외재산을 포기처분, 국세나 각종 벌과금을 낼 가능성은 있다.

<-기업자금의 변태지출이란무엇인가.>
▲기업주가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말못할 곳」에 돈쓸 일이 생기거나 비즈니스명목으로 개인적으로 쓸일이 생기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회사돈을 변칙적으로 빼내 쓰게된다.
범양의 경우 해운합리화 결정과정을 싸고 보다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한 로비용 자금으로 많이 썼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화물선적등 덩치큰 거래에서 관례적으로 발생하는 리베이트 (사례금) 와 커미션등으로 지출된 돈도 적지 않았을것인데 박회장과 한사장이 쓴 비자금규모는 물경 1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금을 비축하기 위해 두사람은 범양 뉴욕지사를 중신으로 현지경비를 과다계상하거나 받은 운임의 일부를 누락시키는등 회계처리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1백억원중 용도가 밝혀진부분은 보험대리점등으로부터 받은 리베이트 3억1천8백만원과 지출되지 않은 임원기밀비를 영수증 조작을 통해 빼낸 3억1천9백만원등 6억3천7백만원 뿐이다.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거액의 외화도피를 왜 막을수없었나.>
▲현재 수출입은 물론 모든 외화사용은 원칙적으로 모두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돈이 나갈수 있다. 그러나 하루 1만건에 가까운 외화사용승인을 일일이 체크하거나 사후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큰 규모의 외화거래가 해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외화 유출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할수있다.
결국 기업의 경우 정례적인 법인조사를 통해 사후적으로 국세청이 세무조사과정에서 체크해야하는데 이번의 경우 범양은 해마다 수백억원씩 적자를 보고 해운업종은 전반적인 불황이라 그동안 법인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정부와 은행이 부실기업 정리를 하면서 기업의 경영 내용을 정밀히 심사하지 않고 무턱대고 지원조치만 해준 점도 결과적으론 외화도피라는 비리를 간접적으로 도운 결과를 가져왔다.

<-국세청 내사란 어떤 것인가.>
▲국세청은 투서나 직접 구두 고발·전화제보등은 물론 조사담당직원들을 풀어 탈세정보를 수시로 모으고 있다.
이렇게 입수된 정보는 자체심사를 거쳐 진위를 가리게 되는데 이때부터가 내사단계다.
내사란 본인은 물론 주위에도 알려지지않게 비밀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컨대 기업의 탈세정보가 있으면 거래은행의 예금입출사항을 은행의 협조를 얻어 챙긴다.
조사·수집된 자료를 분석해 탈세가 사실로 밝혀지면 정식절차를 밟아 세무조사를 하게된다. 세무조사권을 발동할수 있는 사람은 국세청장·지방국세청장및 세무서장으로 사안의 경중에 따라 결정권자는 달라진다.

<-외화도피 1천6백44만달러는 정확한 액수인가.>
▲그렇게 볼수 없다. 이 부분은 검찰조사단계에서 증감될수 있다고 본다. 국세청이 도피된 외화총액을 이렇게 잡은 것은 압수한 비밀장부를 바탕으로 한사장과 관련 임원들의 진술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액수중에는 증거능력이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증거가 뒷받침 안되는 부분도 도피외화에 포함시킨 까닭은 회사경리장부를 더 조사할 경우 증거능력을 댈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단계에서 그동안 조사못한 부분이 새로 발견될 수도 있으므로 외화도피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보인다.

<-범양상선의 향후처리는 어떻게 되나.>
▲일단 경영위기에 빠진 현사태를 수습, 은행관리상태로 2∼3개욀간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이 정부입장이다.
수습방향으로는 은행의 직접 관리, 소유권은 은행이 갖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책임경영하는 방법, 또 제3자 인수방법등이 제시되고 있다. 소유주가 직접관리 해도 챙기기 어려운 것이 해운업이란관점에서 제3자 인수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한선주도 인수에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1조원이 넘는 부채기업을 선뜻 인수할만한 기업이 없다는데 문제가 크다.
업계에서는 4대재벌중 유일하게 해운업에 진출한 현대, 그리고 한진과 대한선주의 인수경쟁을 벌인 조양상선등을 인수업체로 꼽고있으나 앞으로 추이를 더 두고보아야할 일이다. 제3자에게 인수시킬 경우 부채상환 유예조치와는 별도로 프리미엄의 지원도 불가피해 정부로서는 부실기업정리에 따른 또 한번의 특혜시비가 일지않을까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범양상선이 진빚은 누가 부담하나.>
▲회사가 정상운영을 해 갚아야되는게 원칙이나 사정이 그렇지 못하므로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갈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번 해운산업합리화보완대책을 세우면서 범양에만 은행부채 8천4백억원을 장기상환유예 (최장 10년거치 10년분할상환)해주고 세금도 감면해주기로 했다.
부채의 상환유예란 결국 경영부실로 인한 기업결손을 은행이 떠안는 것이다. 그만큼 건실한 기업에 대출해줄 돈이 묶이게돼 이를 충족시키려면 한은이 돈을 찍어 벌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된다.
또 부동산이나 재산처분에따라 당연히 내야할 세금을 자구노력이라해서 감면해주면 국가세수목표는 정해진만큼 국민의 조세부담은 상대적으로 무거워지는 것이다.
부실기업정리가 항시 논란이 되는 것도 이러한 국민부담 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범양상선의 부채가 어떻게해서 1조원이 넘게됐나.>
▲해운불황·해운사통페합에 경영부실까지 겹쳐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80년 한때 4백이나 됐던 해운운임지수 (화72=1백)가 그후 곤두박질, 회복세를 보이고있는 지난3월에도 1백76에 불과했다.
이처럼 운임수입은 줄어드는데 중고선도입 (7척) 등으로 선복량만 늘려놓았으니 고정비용증가로 적자폭이 더욱 커지게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84년5월 통폐합으로 부실해운선사들까지 떠맡게됐고 경영부실까지 겹치면서 부실이 가속화됐다.
범양상선은 84년5월 통폐합때 부채가 3천5백12억원이었으나 삼미·삼익·세방등 부실해운선사를 인수하면서 부채 4천4백63억원을 떠안아 총부채가 7천9백75억원으로 늘었다.
부채규모가 커지는 바람에 연간지불이자도 4백4억원에서 9백17억왼으로 배이상 증가했다.
장사도 잘 안되는데 빚더미만 키워놓았으니 부채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게뵀다.

<-해운업계가 어쩌다 이처럼 부실하게됐나.>
▲해운불황이 첫째요인이지만 세계 해운경기 쇠퇴를 예측못하고 과도히 선복량만 늘려온 당국의 단견적 정책이 오늘날의 해운부실을 초래했다.
수출입국·대규모 선대확보등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남들은 선복량을 줄이는 판에 배값을 90%까지 지원, 중고선 도입을 부추기고 해운면허를 남발한 탓이다.
1백만톤이상 대형선사에는 각종 특혜를 주는등 선복량증가정책을 썼다.
이 결과 70년대말부터 매년 70만∼1백만톤의 중고선이 도입돼 79년 51만톤이던 선복량이 86년에는 7백29만톤으로 늘었다. 따라서 만든지 10년이상된 중고선박이 57.8%나 돼 경쟁력 약화로 적자가 갈수록 커지게 됐다.
또 1차합리화조치때 돈이 좀 들더라도 과감한 지원을 하고 부도처리할 회사는 도산시켰어야했는데 1백11개의 부실회사를 17개사로 묶어놓는등 정리만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