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류청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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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제2의 일본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데 이것은 과히 명예스럽지 못한 일인것 같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부국강병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해서 근대적인 군사력을 갖추게되자 즉시 이웃동아시아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얻어맞고나서야 군사적으로 이웃을 괴롭히는 행위를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파괴의 행위를 마음 속으로부터 반성하는 일본사람은 그 수가 얼마 안되는 것같다. 예컨대 많은 일본인들이 60년대이후 한국이 고도성장을 할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일제식민지 35년통치기간중 자기들이 기초를 잘 닦아준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1백여년 전부터 국내생산이 불가능하거나 국내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원자재와 투자재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모든 제품을 자급자족한다는 것을 국책으로 확립해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실시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을 때에는 별로 큰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았지만 일단 경제대국이 되자 동아시아 이웃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일방적인 무역흑자로 괴롭히게 되었다.
아마 일본은 다시 한번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상응하는 충격요법을 받기 전에는 이와같은 파괴적인 역할을 스스로 그만두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을 상대로 무역수지의 균형을 상상해볼수 있는 나라란 천연자원이 아주 풍부한 1차산품수출국이거나 일본이 생산못하는 첨단제품을 대량공급 할수있는 선진국인데 이것은 미국도 못하는일이다.
하물며 우리가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노동집약적 공산품을 가지고 대일무역수지균형을 달성한다는것은 일본사회 구석구석 체질화된 보호장벽과 사양산업 생명연장에 이골이 난 일본정부 산업정책때문에 거의 불가능할것 갈다. 일본이 지금 OECD선진제국과도 수평분업을 안하려드는 것을 보면 대일무역역조란 일본이 공산품자급자족정책을 고수하는한 우리가 앞으로 좀더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첨단제품을 생산하게 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단하나의 근본적 해결책이란 우리경제 자체의 대일의존도를 하루바삐 줄여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재화수입이 GNP대비 34%를 초과해서 일본의 12%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수입의존도가 높을뿐 아니라 바로 얼마 전까지도 매년 막대한 경상수지적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제2의 일본으로 오해되는 이유를 심각히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84년이후 계속 추진되어온 수입자유화계획에 의해 88년말이면 전체적인 수입자유화율이 95%를 초과하게 될뿐아니라 공산품의 경우에는 수입이 99%이상 자유화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계1백20여개의 후진국중 공산품에 관한한 수입이 가장 개방된 나라라고 떳떳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큰 실속도 없는 특별법 수입규제품목들 때문인것 같다. 현재 특별법으로 수입이 규제되는 품목의 대부분은 마약·총포류와 같이 GATT 규정에 명백한 근거를 두고 있는것이지만 일본식의 음성적 규제를 목표로 만들어 놓은 특별법품목 역시 적지않게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에 속을대로 속은 미국같은 선진제국을 상대로 과거 일본과 똑같은 식으로 우물쭈물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꼭 규제해야할 품목이라면 아주 공식적으로 수입규제품목으로 묶어두고 나머지 특별품목은 누가 보아도 흠잡을수 없게 GATT규정에 맞추어서 법적용을 하는것이 우리 수입자유화 노력의 실상을 외국에 제대로 평가받을수 있게하는 지름길이 될것이다. 물론 농업과 서비스는 단기간내에 개방하기가 힘든 부문들이다.
현재 반신불수 상태에있는 국내 금융산업을 가지고 서비스산업 개방을 한다는것도 위험한 일이고 농업을 비능률적인 부업으로 만들어놓은 일본 정책을 흉내내면서 주요농산물의 수입을 자유화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다. 농업과 서비스는 좀더 연구하고 좀더 철저히 준비하면서 체계적으로 개방해야지 무턱대고 개방못하겠다고 버티다가 301조에 얻어맞고 나자빠지는 정책을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개방을 요구하는 외국에 우리가 나름대로 합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아주 몰상식한 정책만은 피해야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평당 6만원의 시설투자를 한다음 수입원가가 5백원밖에 안되는 바나나 1킬로그램을 9백원어치의 수입석유를 때면서 대대적으로 온실재배하고 있는데, 필리핀같은 천연적인 바나나 생산국 사람들이 이런 것을 볼때에 느끼는 한국인상이란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일본인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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