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 심상찮은 찬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신민당 분당의 새 사태를 맞아 여권의 기류가 심상치 않습니다. 특별성명과 노태우대표위원의 부산발언 등을 통해 합의개헌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합법개헌은 않겠다는 등 노골적으로 호헌코스를 시사하고 있어요.
-여권은 이미 호헌으로 방향을 굳히고 현행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위한 일련의 수준까지 마련한 것 같습니다. 6월말께 전당대회를 열어 대통령후보를 선출하고 개헌문제는 대통령후보의 선거공약으로 89년 개헌 공약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개헌연기와 잠정정부 구상이죠.
-그러나 이 시점에서 내각제 합의개헌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여권의 이런 방침에 대해 신당이 자극 받아 타협적인 움직임을 보여 내각제를 받아들일 경우 물론 개헌은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권의 호헌 방침은 두 가지 성격이죠. 그것이 야당을 자극해 벼랑 끝 협상으로 내각제개헌을 성사시킬 마지막 찬스를 본다는 측면과 그럴 가능성이 없으면 그대로 호헌으로 간다는 측면이죠. 그러나 여권은 최후의 찬스에 대해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고위당직자는 김영삼씨와의 최후담판가능성에 대해『아직도 그런 환상에 젖어 있느냐』고 단호히 배제하더군요.
-여권은 이제 강온 양면으로 정국대처를 하겠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개헌문제는 호헌으로, 두 김씨와 신당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을 하는 한편으로, 이른바 민주화조치를 병행한다는 겁니다. 개헌이 안되면 지자제도 연내에 실시하고, 곧 언론활성화방안·구속자 석방 등의 조처도 내놓을 예정입니다.
-강경방침은 김대중씨에 대한 봉쇄조치로 이미 구체화되고 있어요.
-김대중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외부의 특정 정치행사에 참석 못하도록 하는 가택연금이 실시돼 왔는데 이번의 포괄적인 정치활동 봉쇄조치는 85년 그의 귀국이래 처음입니다.
-두 김씨에 의한 신민당의 신속한 분당이 여권의 의표를 찌른 전격공세였다면 김씨에 대한 봉쇄조치는 여권의 반격이 본격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지난9일 두 김씨를 맹공하는 민정당의 특별성명이 여권 경성대응의 신호탄이었던 셈이죠. 노대표위원의 부산발언은 이를 확인한 것이며 김씨에 대한 봉쇄조치는 공권적 차원에서 경성대응을 현실화한 것입니다.
-여권을 지배하는 현재의 경성 기류로 보아 김씨에 대한 조치는 잠기간 계속될 것 같아 요.
-여권내에도 두 김씨를 금년내 정치권에서 배제한다는 말도 돌고있는데 김대중씨는 그렇다 하더라도 김영삼씨를 배제한다면 그 방법이 과연 될지 궁금하군요.
-여권의 한 고위소식통은 김대중씨에 대한 이번 봉쇄조치는「예방적 차원」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냥 두면 재수감 등 중대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그런 사태를 미연에 막자는 뜻이라는 겁니다.
-야권에서는 여권의 호헌방침이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여권 개헌방침은 「속임수」였다고 비난하고 있어요. 그렇게 열심히 개헌을 외쳤는데 두 김씨가 전면에 나오니 개헌은 물 건너갔다는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죠.
속임수가 아니라면 분당사태를 놓고 정부·여당이 오산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있지요. 잔류파가 어느 정도의 숫자만 되면 합의성 합법개헌을 모색하려고 했으나 예상과 달리 두 김씨쪽으로 대거 몰려가 이 같은 의도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실무자급에서는 분당의 형태·시기에 대해 오판했을 지 모르나 여권고위시각은 두 김씨가 신민당내에 있거나 당 외에 있거나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겁니다. 오산이라기보다 개헌 불가능의 이유가 야당 측에 있다는 증거축적을 의한 계산된 방치가 아닐까요.
-오산이건, 계산된 실수건 간에 개헌실패후의 헌호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 아닙니까.
-호헌으로 간다면 부담이 크다고 봐야 할겁니다.
재야 등의 반정부 통일전선을 형성시켜 줄 우려가 있고 야당이 보이코트 할 게 뻔하기 때문에 선거인단서거부터 차질이 올 가능성도 있어요.
-야당이 보이코트하면 여권후보가 혼자 출마해 혼자 당선되는 양상을 가상할 수 있는데 그래서야 정통성 시비가 더 커지지 않겠어요.
-야당에서는 호헌론과 함께 이른바 중대결단이 나올 가능성도 많이 얘기되고 있어요.
-그러나 5공화국 출범 후 지금까지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정이 운영돼 왔는데 임기 10개월을 앞두고 이제 와서 물리적 조치를 취할 이유는 적습니다.
-신당내에는 분당이후 정부·여당 내 일련의 흐름으로 보아 신당 창당이 과연 순탄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으로는 지구당위원장이 탈당계를 제출하면 그 지구당은 사실상 유고상태이기 때문에 해체 자체가 곤란하다는 점이 있죠.
-탈당계를 정식 제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창당주비위에 들어가 있는 이상 두개정당에 동시 가입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이것은 정당법 저촉사항이기 때문에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여권의 경성자세로 볼 때 가뜩이나 「판쓸이」등을 두려워하는 탈당의원들의 동요가 없지 않을 기능성도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김대중씨의 재수감, 김영삼씨의 형사입건, 박찬종 조순형 김동주 김형내 송간영 송현섭 김용오의원 등 7∼8명의 사법적 처리가 창당과정에서 강행되면「꽃샘」추위를 탈 의원들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죠.
-여권의 대야압력이 진행될 경우 최소한 태도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몇몇 의원들이 다시 신민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많습니다.
-그러나 야권 일부에서는 최근 정부·여당의 태도에 대해 신당의 기세를 약화시키려는 정도로 가볍게 보는 측도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5·17직전과 같은 「방치상태」이지 이번과 같은 힘의 사용은 예방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죠.
-여권의 「협조」(?)가 있게되면 신민당의 재건은 가능한 것인가요.
-신민당 잔류파의 결속은 현재로서는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잔류파 의원들이 모두 「총재급」이기 때문에 한 묶음이 되기는 어렵다고 보더군요.
-특별성명, 노대표의 부산기자회견, 김대중씨 가택봉쇄 등으로 볼 때 당분간 여권의 대야강경태도는 계속될 것 같고 표면적으로는 야당도 강력 반발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정국은 경색될 전망입니다.
-여권의 한 간부는 불투명명한 정국을 오래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임기 내 합의개헌이 나온 4·30 청와대 3당 대표회동 1주년 이전에는 뭔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죠.

<정리=박보균·이재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