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마지막 잎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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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곱게 물들었던 잎들이 찬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계절은 어느덧 겨울로 들어서는 듯하다. 나뭇가지에 달랑 매달린 마지막 한 잎이 가을의 흔적을 추억하며 앙상한 모습을 드러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작품이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다. 폐렴으로 죽음을 앞둔 소녀의 절망적 상황을 안타까이 여긴 어느 화가의 희생적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소설 내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잎새’라는 시적 표현이 더욱 다가온다. ‘ 잎새’는 조락과 소멸, 그리고 희생을 머금은 아름다운 시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하는 윤동주의 ‘서시’에도 ‘잎새’가 시어로 나온다. 과거 이 난(欄)에서 ‘잎새’에 대해 다루면서 ‘잎새’는 표준어가 아니라고 밝힌 적이 있다. 시나 노래 등에서 많이 쓰여 친숙한 말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은 ‘잎사귀’의 방언이라고 규정해 놓았었다.

따라서 공식적인 글에서는 ‘잎새’ 대신 ‘잎’이나 ‘잎사귀’ 또는 ‘이파리’란 말을 써야 했다. 그러나 ‘잎’은 ‘잎새’에 비해 맛이 떨어지고, ‘잎사귀’나 ‘이파리’는 왠지 크고 빳빳한 느낌이 들어 싫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잎새’가 표준어가 아닌 것에 괴로워하면서 불만을 표출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잎새’를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국립국어원은 다행히 관련 심의를 거쳐 올해 초 ‘잎새’를 표준어로 사전에 올렸다. ‘잎새’가 널리 쓰이는 현실을 인정해 ‘나무의 잎사귀. 주로 문학적 표현에 쓰인다’고 설명해 놓았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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