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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 ‘트럼프 놀이’…덩달아 춤출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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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쯤 되면 ‘트럼프 랠리’라고 해도 괜찮다. 미국 증시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원하는 트럼프 공약
의회에서 강력 제동 예상
실현 여부는 지켜봐야

2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활짝 웃었다. 다우존스지수가 사상 최고점(1만8956.69)을 찍은 것을 비롯해 S&P500지수·나스닥종합지수·러셀2000지수 모두 역대 최고치를 깼다. 미국 증시에서 네 지수가 같은 날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1999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이번 랠리의 본질은 트럼프 효과다. 트럼프가 약속한 감세와 재정 확대, 규제 완화가 친기업·친성장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시장은 기대한다. “증세와 규제 강화를 주축으로 하는 오바마노믹스를 트럼프가 역으로 돌릴 것이라는 낙관론이 랠리의 출발점”(피터 부크바 린지그룹 수석애널리스트)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랠리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당장 채권 금리 급등과 인플레 상승, 달러화 강세(원화 약세)와 맞닿아 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서 돈을 빼 주식으로 갈아타기에 바쁘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이미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CNBC는 장기적으로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가 추구하는 강한 성장의 이면을 지적했다. 인플레가 오르면 금리가 오르고 달러화 강세가 야기된다. 고금리와 강달러는 미국 기업 실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게다가 주가는 역사적으로 비싼 수준에 올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P500지수의 경우 현재 기업 이익 대비 20.1배에 달한다. 지난 10년 평균치는 15.7배였다. “시장 펀더멘털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주가 상승은 합리화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월가에서 나온다.

이번 랠리의 특징 중 한 가지는 러셀2000지수의 선전이다. 상대적으로 중소형 종목들로 구성된 이 지수는 미국 대선 이후 11% 올랐다. 2.7% 상승하는 데 그친 S&P500지수를 압도했다. 이유가 있다. 러셀지수 종목의 상당수가 미국 내수에 의존한다. 트럼프가 취임하면 보호무역이 강화될 것이란 예상에 글로벌 사업 비중이 큰 다국적 기업보다 내수용 기업 주가가 뛰어오른 것이다.

미국만 보면 트럼프가 취임하는 내년 1월 하순까지는 랠리에 찬물을 끼얹을 악재는 별로 없다. 그 이후 관전 포인트는 대략 세 가지다.

우선 도드-프랭크법의 철폐 여부다. 금융위기 이후 만들어진 이 법은 월가 금융회사들의 방만한 투자를 차단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법을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금융주가 이번 랠리의 최대 수혜주인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주는 대선 이후 S&P500지수 상승의 54%를 책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뱅크오브아메리카(BoA)·JP모건·웰스파고·씨티그룹·버크셔해서웨이 등 5개 대형 금융주의 주가 상승이 지수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도드-프랭크법은 버락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의 최대 업적에 속한다. 민주당은 애초 집권하면 이 법을 한층 더 강화할 작정이었다. 법안 폐기권을 쥔 상원(100명)의 과반수는 공화당이 차지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47석을 유지하고 있어 상원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공화당 내에서도 이 법에 대한 저항감은 극심하지 않다. 혹독한 금융위기를 겪으며 규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최근 상·하원 합동 청문회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어떤 행위도 동의할 수 없다”며 결사반대를 표명했다.

둘째는 환경 규제 철폐다. 트럼프는 21일 오바마 정부에서 이뤄진 환경 규제를 걷어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셰일가스와 원유·석탄에 대한 생산 규제가 사라지고, 오바마 정부가 가로막아 온 키스톤 파이프라인(캐나다의 석유를 텍사스주로 끌어오는 사업)이 추진된다. 트럼프가 공약대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할지도 관심이다. 이렇게 되면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산업의 운신 폭은 한결 넓어지게 된다. 여기엔 전례가 있다. 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97년 교토의정서에 가입했지만 이어 출범한 부시 행정부 때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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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감세와 1조 달러 인프라 투자의 실천 여부다. 감세는 경제계에서 응원세력이 많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부채는 19조 달러에 육박한다. 공화당엔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이가 적지 않다. 부자증세를 추진해 온 민주당은 물론 반대다. 감세안의 의회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인프라 투자 확대는 민주당도 공감하는 대목이다. 중장비업체 캐터필러 주가 급등에는 이런 분석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재원 마련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 취약점으로 지적된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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