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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촛불 시민’은 앙시앵 레짐 해체를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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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논설주간

이하경 논설주간

우리는 촛불이 어둠을 몰아내는 2016년 늦가을의 광화문광장에서 민주주의의 성장을 지체시켜 온 고질(痼疾)인 ‘시민의 부재(不在)’가 해결되는 역사적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헌법 11조 2항이 금지하고 있는 특수계급이 사유화한 국가의 권력을 되찾겠다는 주권자의 건강한 각성이 세대와 지역·이념을 초월해 공유되고 있다.

‘촛불 혁명’ 주역이 시민으로 탄생
‘특수계급’이 사유화한 국가 권력을
되찾겠다는 주권자의 건강한 각성
민주주의 비상의 조건 갖춰졌으니
앙시앵 레짐 대체할 새로운 틀 필요
이제는 정치권이 제대로 대답할 때

유모차에 탄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남녀노소의 열망은 국정 농단과 헌정 문란의 중심인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일차적 목표에 머물지 않고 있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앙시앵 레짐을 해체한 18세기의 양대 시민혁명,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200여 년 뒤 대한민국의 광장에서 탄생한 시민의 ‘촛불 혁명’으로 부활하고 있다.

‘시민의 부재’가 왜 문제였을까. 1960년 4·19혁명은 젊은 학생이 앞장섰고, 1987년 6월 항쟁은 학생과 ‘넥타이 부대’가 주력이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탐욕의 절제’라는 시민적 교양을 갖춘 다수가 공동체의 문제 해결 과정에 일상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단계에는 못 미쳤던 것이다. 민주화라는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냈지만 결정적인 고비마다 민주주의가 퇴행했던 이유다. 하지만 역사는 2016년의 광장에서 비로소 시민의 탄생을 허용했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비상(飛上)의 조건을 갖춰가고 있다.

4차 촛불집회가 열린 19일은 기적의 날이다. 전국에서 주최 측 집계로 95만 명이 모였지만 부상자도 연행자도 전무(全無)했다. 완벽한 비폭력 평화 집회였다. 격렬한 구호와 화염병, 생경한 운동가 대신 LED촛불과 친근한 대중가요가 광장을 넉넉하게 품었다. 가수 전인권은 “박사모가 때리면 그냥 맞아요”라고 호소했다. 전체적인 리더가 없었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평등하게 드러내고 경청했다. 그래서 마침내 모두가 주인공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불러낸 계몽주의의 최전선에 섰던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계몽은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간결한 선언이 어울리는 행사였다. 여론과 정치권, 검찰이 차례로 민심에 경의를 표시했고, 시민의 집단적 의사는 비상한 시국을 지배하고 있다. 이보다 더 명예롭게 비폭력 혁명을 수행하는 완전체가 존재할까.

광장의 시민들은 분노와 관용이라는 모순적 상태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념이 아닌 행동으로 입증했다. 청와대행을 저지하기 위해 대치한 경찰의 차벽을 꽃모양 스티커로 수놓았다. 타락한 정권의 악행에 분노하고 정치권의 우왕좌왕을 꾸짖으면서도 가장 온건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명예혁명을 훼손할 추호의 허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인 것이다. 법원이 청와대 지근거리까지 행진을 허용한 것은 시민들의 이런 성숙을 믿어준 결과다. 촛불 시위는 온건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명예혁명의 조건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구중궁궐의 대통령보다, 현란한 보고서에 파묻힌 관료보다 세상의 이치에 밝다. 그들은 헌법 1조 1항에 적혀 있는 대로 이 나라가 과연 민주공화국인지를 엄중하게 묻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의 투표 행위를 통해 전체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실현하는 정치 형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이후의 과정에선 돈과 권력을 가진 ‘특수계급’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낸 적나라한 현실이다. 이건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정의와 관용·연대·평등이라는 문명적 삶의 보편적 기초가 허물어진 것이다. 투표를 통한 형식적 참정권만 보장돼 있을 뿐 실제로는 힘센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해먹는 약육강식을 저지른다면 사악한 과두정(oligarchy)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을 파괴한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나왔다. 주권자의 지위를 회복해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전환하겠다는 자기 결단적 행위였다. 촛불을 든 중년의 가정주부는 “투표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어서 나왔는데 내 손으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니 살맛이 난다”고 고백했다.

광장의 시민들은 법적·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을 심판했다. 이제 민심은 앙시앵 레짐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새로운 시대의 틀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라는 실패한 대통령을 만든 ‘박정희 패러다임’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쇄신 요구에는 집권 새누리당은 물론 야당도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들은 “다수의 의사로 운영되는 민주공화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정치권 전체가 촛불 혁명의 심판 대상이 되고 공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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