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치과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네 미각이 얼마나 섬세하고 개성적인가를 자랑할 때 으례 치즈를 들먹인다. 프랑스에는 치즈가 1천여 종이나 있다. 그중에서도 코망베르는 발효식품의 왕자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김치는 신선한 야채를 어느 기간 갈무리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치즈보다 한단계 높은 발효식품이다. 그래서 요즘 일본은 물론 구미에서도 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김치가 언제부터 우리네 식탁에 올랐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중국의『시경』 에 나오는 『밭둑에 외가 열렸다/외를 깎아 저(저)를 담자/이것을 조상에게 바쳐/수를 누리고 하늘의 복을 받자』는 노래속의 저(김치)가 문헌상의 첫 기록이다. ·
주대의 『여씨춘추』에는 더 재미있는 글이 실려 있다. 『평소 주문왕을 존경한 공자가 문왕이 저를 즐겨 먹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따르기 위해 콧등을 찌푸러 가며 저를 먹어 3년뒤에는 그 맛을 즐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점잖은 공자님이 「콧등을 찌푸렸다」면 당시의 저는 무척 시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저는 김치라기 보다는 차라리 오늘날의 피클 비슷한 야채절임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신라·고려때 나박김치·동치미가 있었다. 이것이 임난전후 고추가 들어오면서 담그는 법이 다양해져 이른바 새로운「김치문화」를 형성했다.
작년에 열린 「김치박람회」에 선보인 김치 종류는 모두 1백60종이나 되었다. 반가나 사찰의 「비장김치」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김치문화」를 뒷받침할 「김치과학」은 너무나 뒤떨어져 있어 안타깝다.
최근 일본에서는 상온에서 1개월간 제맛을 잃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저장기술을 개발했다. 거기에다 김치향료, 시어지지 않을 정도에서 발효를 정지시키는 보존료, 김치맛을 내는 소스와 김치라면, 김치피자까지 개발, 종주국인 한국의 김치산업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본김치가 미국에까지 수출된다. 작년의 거래액이 자그마치 6백억엔. 이러다간 세계의 김치시장을 일본이 독점할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일본의 무·배추는 토질관계로 수분이 많다. 김치를 담그면 금방 물렁물렁해진다. 또 일본산 마늘은 아리싱 함유량이 적고, 고추는 향기가 없이 맵기만 하다. 때문에 진짜 김치맛을 아는 일본인들은 한국산 김치를 원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얼마되지도 않는 한국산 김치의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 자국산 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또 한번 「섬나라 근성」을 보는 것 같아 불쾌하기 그지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