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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부딪혀놓고 “누가 긁고 달아났다”…보험 사기범 881명 적발

중앙일보

입력

A씨는 지난해 8월 강원도 화천군의 한 골목길에서 주차하던 도중 벽을 들이받았다. 그런데 정비업체는 A씨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보험사에 ‘누가 긁고 달아났다’고 신고하라. 그러면 자기부담금 없이 차량 전체를 도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정비업체 말대로 “저녁에 주차했다가 아침에 나와보니 긁혀 있었다”고 신고했고, 보험사는 ‘가해자 불명사고’로 처리해 148만원의 차량 도색비용을 정비업체에 지불했다.

이는 자동차 보험금 청구 사유를 조작했다가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사례다. 금감원은 21일 이처럼 차량 흠집ㆍ스크래치(긁힘) 등을 사고로 조작해 보험금을 가로챈 사기 혐의자 881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편취한 보험금은 총 18억6000만원이다. 지난해 1월~올해 5월 하루에 2건 이상의 사고를 ‘가해자 불명사고’로 보험금을 청구한 차량 9584대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이들 사기범은 단순 접촉사고의 경우 보험사가 현장조사를 잘 하지 않는데다 조사를 하더라도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렸다. 사기는 보통 정비업체가 차량 소유주에게 먼저 제안한다. 자기부담금(수리비의 20~30%)을 내지 않게 해줄테니 사고를 당했다고 허위신고를 하라고 주문한다. 그런 다음 차량소유주 대신 내준 자기부담금을 보전받기 위해 수리비를 부풀려 청구한다.

원래는 부분 도색만 하면 되는 차량을 전체 도색을 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법인 차량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B법인은 소유 차량 16대에 각각 2~3개씩 총 36개의 흠집을 ‘가해자 불명사고’로 조작해 21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차량 전체를 공짜로 도색해준다거나 수리해준다는 정비업체의 제안은 보험사기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제안을 받을 경우 현혹되지 말고 금감원 보험범죄신고센터(1332)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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