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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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늘은 용감한 사람을 돕는다』는 말이 있다. 지난 6일 밤 벨기에의 체브루게항 부근에서 벌어진 영국 카페리 조난사고는 슬픔과 감동을 함께 빚어냈다.
한 남자는 물 속에 잠긴 아기의 옷자락을 자신의 이빨로 물어 올려 목숨을 구해주었다.아 마 두 팔은 어디에 매달려 있었던가보다.
어떤 할머니는 갑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한 환자의 훨체어를 붙잡으려다가 캄캄한 바닷속으로 휩쓸러 들어갔다.
이것은 우연한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그들의 용기와 의지가 너무 인간적이다.
영국사람들이 미덕의 교과서로 삼는 책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저술가 「S· 스마일즈」가 쏜 『자조론』.
1859년에 발표된 고전이다.
이 책에 소개된 「참다운 신사」의 면모는 바로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1852년 2월27일 영국의 버큰헤드호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향해 항해하던 중 암초에 부딪친다. 배의 바닥에 구멍이 나고 한순간에 배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배엔 4백72명의 신병들과 l백62명의 부녀자들이 타고 있었다. 새벽 2시, 모두가 곤한 잠을 자고있을 때였다.
갑판 위에선 북소리가 올리고, 군인들은 어느 사이에 열병(열병)이라도 하듯 줄지어 집합했다. 『부녀자와 아이들을 구하라!』지체없이 명령이 떨어졌다. 선장의 목소리였다. 군인들은 선실에 갇혀있는 부녀자와 아이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한쪽에선 이들을 보트에 옮겨 태웠다.
그 사이에 배는 거의 침몰하고 있었다. 선장은 다시 소리 질렀다.『신병들은 모두들 바다로 뛰어 내려 보트를 잡아라』
이때 어디선가 격렬한 음성이 들려왔다.
『안돼! 그러면 보트가 가라앉고 만다』
이미 갑판엔 남아 있는 보트도 없고 배는 자꾸 물 속에 잠기고 있었다. 병사들이 살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절망의 순간에 주춤거리거나 반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소리친 사람은 제인 스코틀랜드 연대의 「라이튼 대위」라고「스마일즈」는 이름까지 밝혀 놓았다.
배가 가라앉는 마지막 순간, 병사들은 축포를 쏘며 죽음을 맞았다.
용기의 승리요, 인간맹언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번 영국 카 페리 사고현장엔 6분만에 첫 구조 헬기가 나타났고 생존자 구호센터는 17분만에 설치되었다.
「대처」수상은 『이날 밤은 슬픔과 고통의 밤이지만 또 용기와 직업 정신의 방이었다』고 말했다.
해피 엔딩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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