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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옥 경제부기자|상장회사의 고무줄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24일 86년도 매출 1백대기업의 보도가 있고 나서 몇몇 증권관계기관들은 폭주하는 기업들로부터의 전화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자료를 왜 내줬느냐고 따지는 전화부터 자사 실적치에 불만을 표시하는 전화, 경쟁타사의 수치를 재차 확인하는 전화 등등….
심지어 엉뚱하게 수치를 불려서는 막무가내로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또 이맘때쯤 기업들의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는가 싶다.
기업에 있어 결산은 하나의 성적표와 같다. 한해 영업을 종합평가하고 다음 사업연도의 지표로 삼는 일이다. 이점에서 정확하고 허심탄회한 결산이 되어야함은 당연하다. 더구나 상장기업인 바에는 그것이 회사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투자자들과도 관계되는 문제인 만큼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풍토는 그러한 부위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기업만의 은밀한 필요나 겉치레를 위하여 멋대로 수치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일이 아직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얼마전 모 건설회사가 「이익 잉여금 처분의 건」으로 주주들에게 의안을 송달했다가 하루만에 「결손 보전금 처분의 건」으로 의안을 바꾼 일도 있었다.
이번에도 일부 건실회사 중에는 엄청난 누적적자에도 불구, 이익이 난것으로 결산하곤 배당은 없는 것으로 했다는 것.
은행과의 관계나 회사채발행·사채시장에서의 신용도(?) 등을 고려하여 어쩔수 없다는 얘기지만 그야말로 눈감고 아웅식의 이같은 분식결산이 부실의 뿌리만을 더 깊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역분식의 경우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3저」덕에 적지않은 상장사들은 지난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덕택에 퇴직급여 충당금·감가상각 등을 허용되는 한 많이 계상했다는 것이고, 몇몇 회사는 이익을 줄여내느라 고심했다는 뒷얘기가 증시주변에 꼬리를 물고 나돌고있다.
수익을 많이 냈다는 사실은 기업의 재무구조가 탄탄해지고 체질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이익을 줄이느라 애쓴 배경에는 대폭적인 이익이 노출됐을 경우 제기될 가격조정문제·임금인상·세금·배당압력 등을 피하려는 기업들의 「또다른 눈치」가 작용했다는 얘기고보면 언제까지 이런 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식상함마저 느끼게 된다. 재무제표가 사실 그대로를 말해주는 기업풍토의 조성에 힘써야될 때가 온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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