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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제도개혁 앞서 사람부터 바꿔 「고르바초프의 모험」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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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가 시작한 개혁조치를 나는 굳게 믿는다. 당정치국과 정부는 개혁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지난19일 발트해연안의 스토니아공화국을 방문중이던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서기장은 자신의 개혁의지를 다시 강조하며 지난달 27일의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의 연설을 되풀이했다.
「고르바초프」는 집권 2년동안개혁정책을 추진하며 지금까지의 특권을 잃지 않으려는 보수파의 반발을 극소화하며 야금야금 인사정책을 퍼왔다.
그는 지방정부에서 부터 자파세력을 꾸준히 확보하면서 권력기반을 굳히며 정치국에까지 손을 뻗쳐 평균연령을 73세에서 65세로 바꿔 세대교체작업을 진행시켰다.
지난해2월 제27차당대회에서는 중앙위원 3백7명증 44%인 1백5명을 새로 선출, 대폭적인 교체작업을 했다. 이것은「브레즈네프」시대의 제26차당대회 (81년) 에서 84명(26·3%)이 개선된것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변화다. 정치국에서도 정치국원 12명중 5명, 후보위원 7명중 5명, 서기11명중 6명을 새로 임명했다.
이렇게 자신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고르바초프」는 정치·경제·문화·사회개혁정책을차근차근 전개해 나갔다.
「고르바초프」 는 85년3월 취임과 함께 발트해연안의 에스토니아공화국등에서 자신의 개혁정책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제개혁내용은▲부분적 개인영업허용▲중앙집권적 지도의 효율성증대를 위한 자율성 확대와 독립채산제▲노동규율강화와 임금체계정비▲과학기술 촉진등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11월19일 최고회의에서 의결돼 오는5월부터 실시될 개인적 근로활동에 관한 법은 소비자의 서비스부족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소비정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가옥수리·TV정비·미용등에 사기업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이처럼 부분적으로 자율적 기업경영과 연계된 인센티브강화와 일부서비스부문을 자영화 함으로써 연방차원에서는 과학기술, 특히 전자, 컴퓨터등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민소득은 4·3%(목표 3·9%), 공업생산5·1% (목표4·3%) 가 증가하는등 80년대이후 최고의 기록을 보이고 있으며 곡물생산도 85년의 1억9천1백70만구에 비해 훨씬 늘어난 2억1천만t을 기록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는 지난달 2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전체회의에서 정치개혁을 제안하면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당간부선출의 복수후보·비밀경선과 비당원의 정치진출 허용을 발표한 「고르바초프」 연설은 이미 일부지방에서 시험되고 있던 것으로 당정치국은 올 여름 일부 지역에서 지방의회와 판사선거에 복수출마와 비밀투표의 새로운 방식을 시범적용하기로 했다.
「고르바초프」 의 개혁의지는 반체제활동가 「시차란스키」의 석방과 「사하로프」박사의 유배해제등 정치범 1백40여명의 석방설에서도 잘 드러나고있다.
이러한 개혁·개방의 물결은 문화계에도 밀려왔다. 『닥터 지바고』의 「파스테르나크」가 복권되고 『로리타』 의 「나보코프」 등이 속속 명예회복돼 그들의 작품도 출간될 예정이다. 소련영화계도 그 주도권이 제작현장의 영화인동맹으로 넘어가고 검열제도 폐지, 자주제작, 자주경영도입등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지고있다.
또 연극인동맹도 지난해 12월 독립을 표명하고 「브레즈네프」시대의 관료주의적 체질을 자아비판했다.
또 추상파·입체파의 그림들이 모스크바중앙전시관에, 거리에 등장하고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스탈린」의 충복「베리야」같은 독재자와 그의 숙청에 희생된 부부의 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공포정치를 고발하는 영화『포카야니에』(후회)다.
지난1월말부터 상영돼 충격적 호응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를 계기로 「고르바초프」 는 과거의 오류를 폭로하고 역사의 어두운 면을 공개하는 역사의 글라스노스티(개방)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글라스노스티는 역대 소련지도자들의 「실패한 개혁」 과는 다른것이 지식인의 자유화에 의한 개혁정책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개혁지지파는 지식인·학자·테크너크래트들로 이들의 포섭이 개혁성공의 전제조건임을 「고르바초프」 는 간파한 것이다.
이밖에도 지난달27일 당중앙위 연설에서 「고르바초프」 는▲공직자 위법행위및 국민의 권리침해에 관한 제소절차▲국민의 권리옹호 및 규율강화▲재판관 독립▲검찰관지휘강화▲재판의 권위존중등을 규정한 새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개혁정책 추진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기간 당간부와 관료들이 새로운 개혁으로 자신들의 특권과 직무보장이 위협을 받을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선 지난70년 동안 특권을 누려온 당·정부 관료기구가 반발내지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 어느 특정지도자의 구호가 실현되는데는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70년동안 중앙집권적 공산체제에 익숙해온 소련국민의 생활을 급속히 바꾼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소련은 「후르시초프」의 좌절에서 보듯이 「고르바초프」 같이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지도자를 거부해온 것이다.「고르바초프」도 이러한 반대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후리시초프」의 개혁을 『환상적』 이라고 비난하면서 보수·부패세력에 대한 폭로와 치밀한 사전실험및 인사포석을 이용,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하고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20일 개혁의 실험실인 에스토니아공화국수도 툴린에서 『민주화로 조성된 새로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 이라고 공공연히 반대파 숙청의사까지 시사하고있다.
그러나 중공의 강력한 지도자인 등소평도 최근, 개혁정책추진에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도 돌발적인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는 영국 더 타임즈지의 지적처럼 제도의 개혁보다 우선 인사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의 거센 개혁·개방의 바람은 소련의 영향권하에 있는 동구에도 큰 충격을 주고있다.
특히 체코의 경우 현재의 「후사크」정권은 지난 68년 소련이 프라하의 봄이라는 「두브체크」 의 민주개혁을 분쇄하고 세운 정권이어서 표면적인 개혁정책 지지와는 달리 내심 괴로운 처지다. 체코의 반체제세력인 77헌장그룹은『우리가 68년 걸었던 길을 이제 소련이 따라오고 있다』 며 환영했다. 이러한 미묘한 관계로 체코 관영언론은 소련의 개혁에 대해 대대적으로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국내개혁문제에는 언급을 않고 있다.
결국 정통파 공산주의 거부와는 달리 사실상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은 앞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던 헝가리·폴란드·불가리아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정통파국가의 억압의 약화와 곧이어질 세대교체등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또 아직 속단할수는 없지만「고르바초프」의 성공여부에 따라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은 동구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김종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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