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구절초 꽃핀 들녘에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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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호 29면

구절초 국화꽃이 핀 가을에 텅 빈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참 멋진 일이다. 최근 나는 소태산 대종사님이 내 인생에 무엇을 간직하게 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쓰려고 하지 말라. 그것이 가장 힘든 인간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가장 발전한 인문학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심리를 알아내는 것이었고 그것을 체계화 한 것이 심리학이다.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어느 고승에게 재벌의 회장이 찾아갔단다. 스님은 물었다. 이 험난하고 초라한 곳에 뭐하러 찾아오셨소, 수고스럽게.


재벌 회장도 온 김에 본전은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질문이 하나 있어서 뵙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내 삶이 편안하게 되는가요?”


스님은 한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말하면 믿겠습니까” 하고 재차 물었다. 당연히 대단한 말씀이 있을 걸로 생각한 회장은 믿겠다고 했다.


스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세상사에서 가장 먼저 편안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입니다. 이것만을 명심하십시오.”


사실 어린아이도 인간관계성 때문에 친구가 있고 스님도 도반이 있고 동네의 돌아다니는 강아지들도 관계성이 있기에 서로 꼬리를 흔들게 되듯 그렇게 관계성이란 인생 전반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디 그것뿐이랴. 내 생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괴롭고 슬프고 외롭고 짜증난다. 결국, 내 생각에 내가 속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님의 말씀대로 세상에 ‘내 마음대로 남의 마음을 가져다 쓸려고 하는 일’은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내 마음대로 안되면 되게 하려고 애쓰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인간관계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서로 힘들게 사는 것임을 일찍이 말씀하신 것이다.


길가에 나가 사람들의 옷 입는 것을 보면 똑같이 입은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그러할 진데 사람들은 내 마음대로 그 사람을 보려고 하고 그게 맞지 않으면 배신자니 어쩌니 한다.


가을 구절초 핀 들녘에 나가봤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든 어찌 됐든 간에 꽃들은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어떤 꽃은 옆으로 어떤 꽃은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있어도 누가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싫어하지 않고 다들 기쁜 얼굴로 향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도 자연의 한 부분. 언젠가는 이 땅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흔적 없이 떠나간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은 ‘그림자 같은 나그네’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이 깊어가는 가을날 누군가 국화차를 만들어 내게 전해줄 날을 기다리는 것도 내 마음의 바람일 뿐이다. 내 마음은 그냥 그대로 보고 오늘은 이런 마음이 나는구나 하고 오직 그 현실을 직시하는 버릇이 깨달음에 다가서는 ‘마음의 향기’일 것이다.


정은광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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