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일치 없는 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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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레닌」 식 「프를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직수입한 북한은 선거 때마다 「1백%의 투표에 1백% 지지」를 자랑삼아 외쳐 왔다.
투표는 노동당이 낸 단일후보에 기표한 후 찬·반으로 구별된 혹·백색 두개 투표함 중 어느 하나에 투입하게 돼있다.
그러나 최근 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조국 소련에서 복수 후보제 선거가 시험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다.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는 종래의 단독 후보제는 당국으로부터의 압력을 배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진정한 만장일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소련의 정치개혁은 광범위하고도 깊이 있게 추진되고 있는「고르바초프」의 그랜드 디자인의 일환이다.
「고르바초프」는 작년 말 반체제 물리학자「사하로프」의 유배를 해제하고 서방언론과의 회견도 .허용했다. 대규모의 정치범 석방도 단행했다.
문화면에서도 『의사 지바고』등 서적과 영화에 대한 판금해제가 이루어졌다
언론분야에도 자유가 확대되어 신문·방송들이 그동안 금기로 삼아왔던 정치적 반대행위와 관료의 비행, 그리고 매춘·도범·마약에 대해서도 보도하기 시작했다.
경제에서는 중앙통제를 완화하고 노동자에 대한 이윤동기 부여 등 흐루시초프이래 시험했다가 중단된 리베르만식 경영을 과감히 도입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야심적인 개혁노선은 「개방」과 「개편」이라는 두개의 단어로 대표되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의 역사는 개방과 폐쇄, 진보와 후퇴의 반복이었다.
혁명직 후 과격·급진 전시공산주의 정책은 다시 후퇴되어 보다 온건한 신경제정책 (NEP)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레닌」 사망 후 「스탈린」은 다시 엄격한 통제체제로 전환, 고립과 폐쇄를 지향했다.
후루시초프가 등장하여 50년대 말부터 다시 개방적인 개혁이 시도됐었다. 그러나 보수파의 반대에 밀려 64년 그가 축출되면서 「브레즈네프」가 등장, 다시 후퇴됐다.
지난 83년 집권한「고르바초프」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보다 과감하고 철저한 개방노선을 내걸고 전 분야에 걸쳐 대규모 개편을 단행해 나가고 있다.
그의 개혁이 대폭적인 우경진보임엔 틀림없다. 경영방식, 정치제도, 언론자유에서의 그의 시책은 다분히 자본주의적 요소가 가미돼 있다.
이 같은 쌍혁은 공산권 전체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돼 왔다. 그것은 먼저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시험적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은 소련과 중공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 밖의 동구 공산국가들과 베트남까지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합형법 제정으로 중공방식을 뒤따르려 했으나 내부능력의 결핍과 그동안의 국제신용 실추로 좌초에 부딪쳤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공산체제의 발전적 변질이다 .그것은 그만큼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에의 접근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적대적인 두 체제의 공존관계를 강화하여 국제긴장을 완화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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