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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평화적 분노 표시로 민주주의의 진전 이뤄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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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 있을 서울 광화문 시민집회는 한국 민주주의 전진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국가권력 사유화 사건에 전 국민적 분노와 퇴진 요구가 결집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17만)이나 주최 측(100만 명)은 광우병 파동 때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3차 광화문 시민시위는 헌법을 부정하고 주권을 유린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심판하자는 민심을 대한민국의 심장부에서 보여줌으로써 박 대통령에게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

헌법·주권 유린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대통령, 더 시간 끌지 말고 권력 내려놓고
야, 정략 아닌 거국중립내각 진정성 보여야

소중한 뜻을 살리기 위해 시민들이 유념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평화적인 행동이다. 1960년, 80년, 87년 세 차례 있었던 광장 민주주의 역사는 평화적 행동만이 대의와 명분을 얻고 그 위대한 힘으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낸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폭력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적일 뿐 아니라 시민의 광범위한 참여에 찬물을 끼얹어 집회를 위축시키고 냉소만 남기는 최악의 행동이다.

시민의 분노와 퇴진 압력을 정치적·정책적 의사결정으로 구체화하는 곳은 국회다. 정치의 한 축인 대통령이 기능 중지에 빠졌으면 여야 정당이 무한 책임의식을 갖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은 식물상태고 야당은 자기들 집권에 유리한 환경 만들기에 골몰하는 인상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2선후퇴와 관련해 “군 통수권, 계엄권, 국정원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권 등을 거국중립내각에게 넘겨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그의 본심이 진정 거국중립내각에 있다면 대통령에게 위헌을 강요하는 반헌법적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또 다른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통령에게 아예 하야하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럴 경우 한국 정치가 60일 이내 조기 대선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 정치권은 주말 시민집회가 끝나면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집중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현재 우리가 보기에 가장 합리적인 2선후퇴는 박 대통령이 ①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②모든 권력을 깨끗이 내려 놓고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대국민선언을 하고 ③제왕적 대통령의 근거지인 청와대 비서실을 대폭 축소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2선후퇴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민심과는 동떨어진 채 상황반전을 꿈꾸는 친박세력의 허황된 망상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야권은 실질적 2선후퇴의 조건을 합의함으로써 권력진공 상태를 하루빨리 메우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애국임을 깨닫기 바란다. 우리는 국가 원수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한 박 대통령이 즉시 청와대에서 스스로 걸어나오거나 탄핵돼야 한다는 성난 민심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탄핵이든 하야든 대통령의 퇴진이 필요하다면 거국내각을 구성한 뒤에 진행해도 순서상 어긋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