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과 협상 재개가 발등의 불|군부지지 획득·단합도 큰 문제|지지 보답 「빵 문제 해결」위한 경제재건도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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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키노」대통령의 『정치적 압승』으로 끝난 필리핀의 신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는 두 가지 점에서「아키노」정부의 앞날에 청신호를 던져주고 있다.
첫째는 국민투표라는 공식정치행사를 통해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작년2월 민중혁명을 통해 출범한 「아키노」정부의 정통성시비를 말끔히 불식시키고 정권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또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국민들의 선거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고 국민들이 힘에 의한 정치변화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확실하게 나타내 주었다.
둘째는 이러한 절대적 국민지지를 바탕으로 「아키노」대통령은 작년2월의 민중혁명의 뜻을 완성시키는 제2의 민주화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아키노」정부는 지난 1년간 정통성시비에 휘말려 20년「마르코스」독재정권의 잔재 청산과 민주화작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3번에 걸친 군부의 쿠데타기도, 「마르코스」추종자들의 계속되는 데모, 좌익세력의 토지개혁 요구 등 숱한 도전들이 「아키노」정부의 존립을 위협했었다.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하고「승리」를 쟁취한 「아키노」정부는 이제 사회·경제적인 민주화작업을 강력하게 펴나갈 수 있게 됐다.
국민투표에서의 승리가 곧 필리핀 민주화의 완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국민들이 「아키노」대통령에게 민주화를 완성시키라는 자유재량의 「무거운 짐」 을 지워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투표승리는「아키노」정부에는 험난한 민주화작업의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아키노」정부가 앞으로 해결해야 될 난제는 ▲군부의 단합과 지지획득 ▲공산세력과의 평화협상재개 및 18년 내전종식 ▲토지개혁 등 경제문제 해결 등으로 크게 요약될 수 있다.
「아키노」대통령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군부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고 군부의 단합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군인들의 60%정도가 반대표를 던진 사실에서 나타났듯이 군부의 「아키노」정부에 대한 불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필리핀군부는 「아키노」정부의 국민화해에 바탕을 둔 공산세력과의 평화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또 군부는 미군기지 문제를 둘러싸고 「아키노」정부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공산세력과의 평화협상 추진문제는「아키노」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년 12월10일부터 60일간 휴전에 들어갔지만 지난달 22일의 「멘디올라교의 살상」이라는 돌발사건으로 신인민군(NPA)의 정치조직인 민족민주전선(NDF)의 협상대표들이 1월6일부터 개시된 제2단계 평화회답 철수를 선언하고 지하로 들어가 휴전시한이 끝나는 8일부터는 다시 내전이 불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필리핀국민들에게 평화를 「선사」했던 분위기는 깨지고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성사시켰던 국민화합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공산세력이 「아키노」정부에 내세우는 요구사항은 ▲「마르코스」독재의 잔재경산과 필리핀공산당(PPP) 인정 ▲토지개혁의 전면실시와 국민생활향상 ▲미군기지 철수와 주권확보▲궁극적으로 공산세력의 연정참여 등이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어느 하나 「아키노」정부가 쉽사리 받아들이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어서 공산측과의 평화협정체결은 난제중의 난제라 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NDF측과 만나 휴전시한을 연장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지난 20년간 「마르코스」독재치하에서 피폐된 필리핀경제를 회복해야 하는 것도 「아키노」정부의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다.
60년대까지 만해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지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필리핀 국민들은 이제 외채 2백7O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 6백달러 이하라는 빈곤국가로 전락해버렸다. 「마르코스」2O년 독재가 남겨놓은 유산인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인구 7O%의 농촌지역 궁핍은 더욱 심해 빵을 찾아 농민들이 신인민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좌익세력과 농민들이 요구하는 토지개혁은 「아키노」정부도 우선 순위의 정책으로 삼아추진하고 있으나 사병까지 갖춘 토지재벌들의 반대와 재정부족으로 정부의 토지구입이 힘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아키노」대통령에 안겨다준 국민들이 그 반대급부로 「빵문제 해결」의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 것이 명백한 만큼 「아키노」정부는 보다 과감한 국민경제정책을 수립해 국민에게 희망과 기대를 선사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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