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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반한 ‘환상의 듀오’…슈만·브람스로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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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왼쪽)과 손열음(피아노).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왼쪽)과 손열음(피아노).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300석 전석 매진. 이 듀오의 2013년 흥행 성적표다. 그해 12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꽉 찼다. 서울 뿐 아니라 순천·거제 등 6개 도시에서도 매진에 가까운 기록을 남겼다. 피아니스트 손열음(30)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9)이다.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계보 다 꿰
“상대방 숨만 쉬어도 나올 음악 알아”
주미 강, 항상 피아노 악보까지 연구
“작곡가 생각에 가까워지려는 거죠”

손열음은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주미 강은 인디애나 콩쿠르 우승 등 국제 무대에서 거둔 성과가 화려하다. 그 둘이 만나 한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흥행을 일궜다. 그러나 그 비결은 단순히 경력이 아니다. 둘은 서로의 악기에 푹 빠져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피아노를, 피아니스트는 바이올린을 사랑한다. 9일 만난 두 연주자는 “우리 듀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 점일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 특징을 감지한 청중이 객석을 채웠고, 3년 만에 듀오를 다시 무대로 불러냈다. 최근 음반을 발매한 이들은 10일 대구에서 전국 투어를 시작해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바이올린에 빠진 손열음=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2000~2002학번 바이올린 전공생의 반주를 도맡았다. “30여명 중 15명 정도의 전속 반주자처럼 활동했다”고 기억했다. 나중에는 지도교수가 걱정할 정도로 바이올린 반주만 하고 다녔다. 그는 “바이올린을 피아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좋아한다”며 “가끔은 문제가 아닐까 고민할 정도”라고 말했다. 거의 매일 바이올린 음악을 듣고 바이올리니스트의 계보를 꿰고 있다. 바이올린의 뜨겁고 본능적인 음색에 끌린다고 했다. 피아노는 그에 비해 차갑고 이성적이다.

10여년 전 주미 강과의 첫 만남에서도 바이올린에 대한 관심이 튀어나왔다. 대학 시절 처음 만나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습할 때였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바꾼 악보를 보자마자 손열음은 마치 연습해온 듯 완벽하게 연주를 했다. 주미 강은 “처음 보는 악보를 한 음도 빼놓지 않고 피아노로 다 쳐서 놀랐는데 알고보니 원래 좋아해서 외우다시피 하던 곡이라고 하더라”고 기억했다.

남의 악기에 대한 관심은 쌓여서 실력이 됐다. 손열음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내 옆에서 숨만 쉬어도 어떤 음악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클라라 주미 강은 “사실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 연주에 완벽히 맞추기는 쉽지 않다”며 “손열음은 활이 악기에 닿고서 실제 소리가 나기까지 타이밍까지 정확하게 맞춰주는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전국 투어를 앞둔 9일 서울 한남동 스트라디움에서 연주하는 모습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국 투어를 앞둔 9일 서울 한남동 스트라디움에서 연주하는 모습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피아니스트 이름 딴 클라라=바이올리니스트의 피아노 사랑도 만만치 않다. 이름부터 그렇다. 영어 이름 ‘클라라’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에게서 따왔다. 지금은 슈만의 아내로 알려졌지만 실은 어린 시절부터 유럽 전역을 사로잡았던 피아노 신동이었다. 주미 강의 부모는 딸이 피아니스트가 되길 바라며 영어 이름을 지었다.

어려서 피아노를 쳤던 주미 강은 결국 바이올린을 선택했지만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깊다. “피아노는 바이올린과 달리 수백가지 소리를 한번에 낼 수 있는 경이로운 악기”라며 “특히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피아노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연주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피아노 악보까지 한꺼번에 보며 음악을 연구한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협주곡에서도 다른 악기의 악보를 연구한다. 주미 강은 “사실 바이올리니스트가 다른 악기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연주하는 선율만 보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게 다른 악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작곡가의 생각에 가까워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 듀오의 정체성은 딴짓 혹은 외도다. 무대에서도 스스로 돋보이려는 욕심 대신 상대방의 소리를 들어보려는 배려가 지배적이다. 괜한 양보가 아니다. 상대방의 악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손열음은 “앙상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긴장감 때문에 부러질 것 같은 조합도 있지만 우리는 한없이 편하다. 무엇보다 연주하는 우리가 신기할 정도로 편안하다”고 말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한국인 여성 연주자라는 공통점 또한 둘을 단단히 묶는다. 2011년 손열음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갔을 때는 주미 강이 실시간 중계를 지켜보고 문자를 보내며 응원했다. 지난해 주미 강이 같은 대회에 나갔을 때는 손열음이 러시아 모스크바 현장의 객석에 앉아 주미 강의 연주를 들었다.

3년 전엔 프로코피예프를 함께 연주했고, 이달 무대에서는 슈만·브람스를 들려준다. 이들은 “다음 번엔 베토벤을 하고 싶다”며 그 이유를 서로에게서 찾았다. 손열음은 “주미가 베토벤의 건축적인 면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 했고 주미 강은 “손열음의 베토벤에선 작곡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온다”고 말했다. 둘을 함께 무대에 오르게 하는 힘은 이처럼 서로의 음악을 기대하는 데에서 나온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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