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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울렁증 환자들 돌보는 진짜 의사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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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윤상원씨는 진료실에 있는 마이크와 컴퓨터로 자신의 강의 음성을 녹음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 올린다. 또 계속되는 카페 회원들의 영어 고민과 영문법 질문들에도 실시간으로 답을 해준다. [사진 김경록 기자]

윤상원씨는 진료실에 있는 마이크와 컴퓨터로 자신의 강의 음성을 녹음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 올린다. 또 계속되는 카페 회원들의 영어 고민과 영문법 질문들에도 실시간으로 답을 해준다. [사진 김경록 기자]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진단하고 처방해주는 진짜 의사가 있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윤상원(52)씨다.

무료 영문법 카페 운영 윤상원씨
문법 쩔쩔매던 딸 보고 공부 시작
6년째 콤마 속독법 등 처방과 진단
공시생 등 회원 1만3500명 달해

그는 2011년부터 6년째 무료 온라인 영문법 카페 ‘닥터 잉글리쉬(cafe.naver.com/doctorgoodenglish)’를 운영 중이다. 회원 수만 1만3500명에 달한다. 윤씨가 12년간 영문법을 독학하면서 정리한 자료와 공부법을 전파하는 공간이다. 이 카페는 영문법 기초부터 공무원 영어시험 기출문제까지 1만여 건의 자료들을 갖췄다. 그는 2011년 영문법 책 『닥터 잉글리쉬』를 출간한 데 이어 최근엔 개정판도 펴냈다. 병원을 강연장 삼아 온라인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특강도 한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좋은세상의원에서 그를 만났다. 진료실 책상에는 컴퓨터에 연결된 스탠딩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는 “마이크와 동영상 녹화 프로그램을 활용해 내 강의 음성을 녹음한 뒤 카페에 올린다”고 했다. 컴퓨터에선 카페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음을 알리는 알림음이 수시로 울렸다. 공부법 고민부터 영문법 질문들에 대해 그는 적절한 ‘댓글 처방’을 내려준다.

윤씨가 새삼스레 영문법을 파고들게 된 건 딸 때문이었다. 2004년 초등학생이던 딸이 영문법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걸 보고는 직접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는 온라인 영어 사이트들에서 구한 자료를 보면서 독학했다. 의학 공부 때처럼 일정 분량이 쌓이면 공부한 내용을 요약·정리하고, 수시로 다시 봤다. 그러면서 콤마(,)가 많은 긴 문장도 쉽게 독해하는 일명 ‘콤마 속독법’을 터득했다.

“문장을 삽입할 때 쓰는 콤마, 문장이 병렬구조를 이룰 때 쓰는 콤마 등 각 콤마별 성격을 이해하면 해석이 쉬워져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암기도 쉽게 했다. 단·복수 형태가 같은 명사는 ‘양(sheep) 같이 순하고 예쁜 사슴(deer), 물고기(fish)’란 문장을 만들어 외우는 식이다. 2010년 이런 내용들을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입소문을 탔다. 이듬해 윤씨는 자신이 터득한 공부법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 직접 카페 ‘닥터 잉글리쉬’를 개설했다. 회원 대부분은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다. “지금까지 5명의 합격생이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어요. 환자를 살리는 것과 비슷한 보람을 느끼죠.”

그에게 영문법을 배운 딸 윤진리(24)씨는 미국 남가주대(USC)를 졸업한 뒤 현재 미국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환자들에게 어려운 의학 지식을 쉽게 설명해 줄 때처럼 어려운 영문법을 쉽게 설명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그의 남은 꿈은 ‘영어 선생님’이다. “파트타임 강사라도 하고 싶어서 영어학원 몇 곳을 찾아갔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죠. 하지만 포기 안 해요. 제 남은 인생은 꼭 ‘영어 선생’으로 살 겁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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