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해는 너무 더워…‘방 빼는’ 방어·대구·삼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방어·광어 같이 제주도에서 잘 잡히는 생선을 대형 마트에 납품하는 ‘행복한 광어’ 오기수(45) 대표. 회사는 제주도에 있지만 그는 지난달에만 15일을 강원도 고성에 머물렀다. 제철을 맞아 수요가 늘어난 방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3년 전만 해도 오 대표가 제주도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한 달에 평균 2~3일은 강원도로 출장을 간다. 제주도가 주산지였던 방어가 되레 강원도에서 잘 잡히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남쪽에서 잘 잡히던 생선이 제철을 맞았는데도 내려오지 않아 동해 쪽으로 아예 회사를 옮기거나 지사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산물 지도가 바뀌고 있다. 높아진 수온 탓에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 대표 어종이 동해(또는 서해)로 올라가고 있어서다. 한류성 어종인 방어·대구·삼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어종은 봄에서 가을까지 북쪽에 머물다가 겨울에는 수온이 낮아진 남해로 몰렸다. 산란기인 겨울이 제철이라 제주도나 울산·통영이 주산지로 꼽혔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최근 남해 수온이 높아지면서 동해나 서해에 머무르는 물고기가 늘었다.

방어는 6~7년 전만 해도 주로 제주도에서만 잡혔던 제주도 대표 어종이다. 서귀포시 모슬포 일대에서 대부분 어획이 이뤄졌고 매년 11월 ‘모슬포 방어 축제’가 열렸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12년부터다. 전체 어획량 중 제주도(모슬포수협) 비중이 61%, 강원도(죽왕수협)이 39%를 차지했다. 현재는 제주도가 6.5%에 불과하다. 나머지 93.5%는 강원도산이다. 이윤석 롯데마트 수산 바이어는 “지역 먹거리였던 방어는 제주도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수요가 늘었고 11월 제철 횟감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제주도서 잡히는 어획량은 매년 줄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구도 주산지가 달라지고 있다. 남해와 서해에서 비슷한 비율로 잡히던 상황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울산(방어진수협)과 충남(보령수협)에서 잡힌 물량은 각각 49.4%와 50.6%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올해는 대구 100마리 중 85마리가 충남 일대(서해)에서 잡혔다.

삼치도 마찬가지다. 주로 남해에서 잡히는 어종이지만 최근 동해 어획량이 늘었다. 경남 통영(통영수협) 어획량 비중은 지난해 82.6%에서 올해 69.6%로 줄어든 반면 경북 울진(후포수협)은 같은 기간 17.4%에서 30.4%로 커졌다.

제주 어종 방어, 93%가 강원도산
수산업자도 어종 따라 회사 옮겨
수온 더 오르면 전체 어획량 감소
전문가 “가두리 양식 등 대안 시급”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산업자들도 강원도로 모여들고 있다. 죽왕수협의 방어 경매 입찰액은 2012년 9억4000만원에서 지난해 21억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모슬포수협의 경매 입찰액은 같은 기간 14억7000만원에서 6억2000만원으로 줄었다.

동해나 서해에 머무는 어종이 늘어나면서 식탁 사정도 달라졌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에서 올해 판매하는 방어는 100% 강원도산이다. 지난해는 제주도산이 20%, 강원도산이 80%였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 부담은 조금 줄었다. 제주도산 방어(6만원)보다 강원도산(3만원)의 도매 가격(4~5㎏ 기준)이 더 싸기 때문이다. 운송료 등의 부담이 적어서다. 지난해 이마트에서 판매한 방어 가격은 240g 기준 1만5800원이었지만 올해는 10% 정도 저렴한 1만4000원선이다. 원국희 이마트 수산 바이어는 “강원도산이나 제주도산이나 맛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약간 싼 가격에 방어회를 맛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당장은 가격 부담이 약간 줄었지만 장기적으론 수온 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전체 어획량이 줄어들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 어종의 어획량은 감소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방어 어획량은 2013년 1만3625t에서 올해 4532t으로 줄어 3년 사이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구는 같은 기간 9133t에서 2178t으로 감소해 20%에 불과하다. 삼치는 2만9394t에서 1만6078t으로 감소했다.

방어는 강원도산 대체제 덕에 가격이 약간 내렸지만 대구·삼치 가격은 오르고 있다. 삼치는 지난해 20㎏당 도매가 기준 5만~6만원이었지만 현재는 8만원으로 올랐다. 도매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 가격도 올랐다. 지난해 4000원(700g)이었던 삼치 가격은 현재 대형마트에서 7500원이다.

대구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4000원이었던 가격(700g)이 현재 6000원으로 뛰었다. 이창곤 롯데마트 수산 바이어는 “대구의 경우 북쪽 차가운 바다에서 내려오질 않아서 씨가 말랐다고 할 만큼 어획량이 줄어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홍덕 이마트 수산팀장은 “수온 상승을 막을 수 없다면 다양한 어종에 대해 가두리 양식 활성화 등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