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그늘|한천석 <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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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진 자가 못가진 자에게 내미는 맹랑한 소리가 있다. 누가갖지 말랬느냐, 가난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 때론 구박과 멸시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엔 돈후화목이니 상부상조니하는 덕목은 처음부터 끼여들 자리가 없다. 남는 것은 냉혹한 비정과 이기주의 뿐이다. 과연 세상이 그래야옳을까. 조반석죽을 할망정 몸은 건강하랬던가. 못가진자가 병마저 들면 그야말로 눈위에 서리가 내린 격이다. 특히 일정한 직장없이 붓 한자루에 생계를 의지하는 문인의 경우는 더더우기 참담하다.
이나라 예술문화단체에도 의료보험제도가 없는건 아니다. 있기는 있다. 하나 여기서도 정말 어려워 수혜자가 돼야할 문인들에겐 「그림의 떡」인 꼴이 되어 딱하기만 하다. 매월 불입해야만하는 보험료가 1만4,5천원선으로 그나마도 3개월 단위로 한몫에 4,5만원씌 내란단다. 목에 힘깨나 주는 이들이야 아이들 사탕값쯤 여길는지 모르겠으나 없는 이들은 매달 나오는 전기료 6,7천원도 힘겨운게 실상이다. 문학인이래서 전부 가난한것은 아니다. 일정한 직장이 있는 문인에게야 예술인단체의 의료보험은 애당초 관심사가 안된다.
자연 어려운 문인들만 목이 더 가늘어지니, 여기서도 부익부빈익빈아닌가.
이젠 이나라의 문단인구도 2천여명을 상회하며 그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아니다. 4,5만원이란 보험료가 매달 50,60만원을 벌수있는 이들에게 산출근거를 두었다 하니,과연 이나라에서 붓 한자루를 가지고 그만한 수입을 올릴수 있는 문인이 몇사람이나 있다고 보는지. 생각을 가다듬어 보자. 그외롭고 어려운 제도의 길을 10년, 20년 평생을 분골쇄신하다가 못가지고 병들었다 해서 병원문구경도 못해본채 고종명을 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이따금 지상의 보도를 보면 하늘을 날다가 떨어진 조류도 병든 놈은 치료해주어 살려 보냈다는데 설마 이나란 문인들의 몸값이 새의 그것만도 못할까.
요즘 항간엔 소위 예술문화단체장 선거열풍이 뜨겁다는 소문이다. 출마자들은 저마다 이나라문화와 예술인들을 위해 견마지로의 정성을 다하겠노라는 열변이 대단하다. 글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글귀쯤은 알만한 장자들일진대, 여기 내집안 「그림의떡」부터 곱게 지워버릴 애정이나 재주는 없을는지. 행여 지성의 포기나 침묵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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