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달과 로보트|송재찬 <동화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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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파트 숲 위에 떠오른 반달을 보고 『아빠, 저기 달이 깨졌어!』 하고 깜짝 놀라던 건호가 이제는 네살이 되었다.
장난감 자동차에 흠뻑 빠지더니 요즘은 로보트에 묻혀 산다. 새 모델의 로봇를사고, 로보트 노래를 부르고, TV에서 로보트만화 영화가 나오면 환호하며 텔리비전 앞으로 다가간다.깨진 달을 보고도 이제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깨진 달 따위는 엄마·아빠 마음에만 명시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미래의 로보트 박사인 건호의 친구들도 얼굴과 식성만 다를 뿐 모두 로보트광이다.
변신·분리·결합·기지같은 전문용어(?)까지 나열하며 로보트놀이에 몰두하는 것을 볼때면 기특하고 대견하다기 보다는 무서운 느낌까지 든다.
『여보, 우리 건호를 로보트에서 해방시킵시다. 다른 놀이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게 있다는것을 보여줘야 겠어요』
내 제안에 아내는 『아이들에게 로보트 놀이 말고 재미있는게 뭐 있겠어요?』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결국 아내와 나는 일일유치원을 개설하기로 했다. 1교시 노래공부, 2교시 옛날 이야기 들려주기, 3교시 예절생활, 4교시 게임.
원생은 우리 건호와 친구인 경준 형제, 그리고 나와 아내가 번갈아 가며 교사가 되기도 하고 원생이 되기도 했다.
수업은 약간 엄격하게 진행됐다. 한 사람이 4명의 원생을 가르치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일제 수업보다는 개별학습이었고 발표를 통해 개개인의 특성이 원하게 드러났다.
보통 때 간파할수 없었던 아이들의 장·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게 아내는 무척 홍미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수업후에 아내와 진지한 육아토론을 했고, 아내는 다시 경준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게임시간에는 로보트 놀이보다 더 재미있어 했다. 입에 문 나무젓가락으로 구멍뚫린 색종이를 건네주는 간단한 게임이었는데도 우리는 몇번이나 그 놀이를 했다.
저녁을 먹는데 두 군데서 전화가 왔다.
『내일도 유치원 해요? 우리애도 보낼께요. 그렇게 재미있게 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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