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의 체온이 아직도 가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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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미의 가슴에 못을 남긴채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들을 잃은 이 어미가 무슨 할말이 있겠읍니까.
부처님의 백팔번뇌가 이런 것인지요.
세상사 가시밭길의 고통이 어찌 살붙이를 잃은 어미의 마음 보다 더하겠읍니까.
그러나 내아들을 빼앗아가버린이 세상 어미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빌며 이글을 씁니다.
더이상 이땅이 고문 같은 사바세계의 고가 만연하는 땅이 되지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온 남자를 만나 남편이 상경하겠다고 할때만해도 철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싶어 가슴이 철렁했지만 청천벽력같은 일을 세상 어느 어미가 생각이나 했겠읍니까.
아버지로부터 동생의 비보를 듣고도 심장이 약한 어미걱정에 말을 않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울기만하는 딸아이에게 『경찰에 구속돼도 2∼3년이면 다시 새사람이 될것』이라며 타이르기까지 했던 이 어미는 전생에 무슨 죄업을 타고 난것일까요.
이 세상 어느 어미가 자기 자식을 귀엽지 않다 하겠읍니까마는우리 철이는 정말이지 총명하고 귀여운 아이였읍니다.
5살때 국교2학년이던 누나의 교과서를 읽을 정도로 총명해 남보다 1년이나 일찍 국교에 입학시켰읍니다.
자라는동안 아프거나 다쳐서 놀라게 한적도 없고 약이라고는 국교4학년때 코피를 자주 흘려 녹용3첩을 달여 먹인것이 전부였읍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을 남편(부산시수도국 청학양수장 주임)을 닮아서인지 고교를 다닐때 철이는 전교에서 제일 먼저 등교하고 가장 늦게 하교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 문을 열고 닫는 것은 항상 철이의 일이었읍니다.
그런 내아들이었기에 고3 1년동안 내자신 수험생 생활을 하면서도 피곤한줄을 몰랐읍니다.
곤히 자는 철이를 깨워 미싯가루와 초코파이로 아침을 먹이고 점심도시락을 싸서 보낸뒤 따뜻한 밥과 국물을 학교까지 날라 주는 일이 정말이지 보람이었읍니다.
집(당시는 서대신동)에서 빤히보이는 혜광고교 도서관 불이 자정무렵 꺼지는 것을 보고 집과 학교의 중간지점인 동대신동 시장부근에서 철이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일도 이제는 모두 부질없는 애끓는 기억이겠지요.
불현듯 아들생각에 도서관 창문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볼때는 이것이 어미의 행복이려니 가슴 뿌듯했는데….
첫번째 서울대응시에서 실패한 아들을 서울종로학원으로 유학보낼 때 철이는 처음 어미품을 떠났읍니다.
하루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반야심경과 천수경으로 달래야했읍니다.
이듬해 서울대배지를 단 철이의 모습은 정말이지 대견스러웠읍니다.
철이는 남을 잘 돕고 항상 웃음띤 명랑함 때문에 친구들도 많았읍니다.
불쌍한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착해 고3때 내가 매일저녁 날라다준 저녁밥을 불우한친구들과 나누어 먹느라 자신은 굶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뒤의일이었읍니다.
철이 들면서는 내가 사랑했던만큼 어미를 생각하는 아들이었읍니다.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돼 시내버스를 탔다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이미자의 노래를 들었다면서 테이프를 사보내주며 보고 싶을때 들으라던 철이.
생일날에는 잊지않고 불경서적을 사보내주었고 지난해 집행유예로 풀려난지 10일만의 생일날에는 시내까지 나가 사온 케이크에 나이수만큼 촛불을 꽂곤 『엄마 한꺼번에 불어서 꺼야해』하던 어리광이 귓전에 맴돕니다.
지난해 7월 구치소에서 출감한 철이에게 다시는 데모같은데 가담하지 말고 대학원까지 마쳐 교수가 되라고 타일렀읍니다. 학생때 참여하는 것보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가 되어서 뜻을 펴는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어줍잖은 어미의 말에도 철이는 순종했고 그후로는 정말 공부에만 전념했읍니다.
12월29일. 부산에 내려와 철이는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나에게 『엄마』하고 어리광부리듯 안겼읍니다.
막내의 등을 두드리며 안아본 것이 마지막이었지만 아직도 이 가슴에는 그 아이의 체온이 묻어나는 것같군요.
지난12일 서울 하숙집에 전화를걸어 마지막 통화를 했읍니다.
매달 20일 선불로 주었던 하숙비를 이번 달엔 마련못했으니 후불로 하겠다고 주인에게 전해달라는 말과 잡비 2만원을 내일(13일) 보내주겠다고 했읍니다.
철이는 어미가 보내준 2만원도 손에 쥐어보지 못하고 가버렸읍니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눈에 어른거리는 철이. 그 아이가 괴로움을 당하며 숨져간 시간을 이 어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쥐어짜고 싶도록 원망스럽습니다.
지금이라도 문을 열면 서 있을 것같고 전화를 걸면 『엄마』하고 부를 것같은 철이가 고문을 당한 생각이 들면 온몸이 굳어져버립니다.
내자식 귀한만큼 남의 자식도 귀한줄 알았다면 어찌 어린 것에게 그런 몹쏠 것을 할수 있겠습니까. 그 아이가 무슨 큰 죄인이란 말입니까.
다시는 이땅위에 이 어미와 같은 불행이, 내 자식같은 고통이 없어지길 부처님께 두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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