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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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제1장 「하늘과 대지」 는 민족의 형성과 고조선의 건국과정을 이야기로 형성하려는 장인 셈이다. 대략 중국의 북동부에서 난하와 대릉하와 요동에 이르는 만주지역이 동이의 활동지역이라 전하여지며, 동이는 일찌기 몽고 북부로부터 초원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여 중국 대륙의 황해 연변 지역에서 난하 발해 인근에 걸쳐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고조선의 건국에는 몇가지의 역사적 원인이 있을터인데 북방 유목민으로부터 받은 끊임없는 위협과 중국 대륙에서의 또 다른 이민족의 압력이 그 자극이었을 것이다. 동이는 밝족이라고 통칭되면서 조선이나 예맥이나 청구, 고죽, 옥저, 숙신 등등의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진채로 자연형편이나 세력에 따라서 크고 작은 부족전쟁을 벌이면서 이합집산하고 연대를 가지게도 된다. 청동기가 무기로 사용되면서 무력으로 생산의 결과를 축적하는 부족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부강이 잉여 생산물의 독점과 함께 집단 노예노동이라는 생산 양식의 변화를 일으키고, 농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부족 사이에서는 강력한 집단의 힘을 가진 부족과 뒤떨어진 부족 사이의 갈등 관계가 생겨날뿐 아니라, 고대인들 개개인에 있어서도 당과 생산물 을 많이 차지하는 쪽과 무력으로 전공을 이룬자들에 대하여 정복당한 부족의 노비들과 개인 소유의 땅이 없는 하호 계층과 평민의 무리가 생겨난다. 따라서 고조선 건국은 신화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하늘의 뜻과 당의 삶이 분열 갈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늘을 대행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사회구성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고조선의 건국이 바로 민족의 형성에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하나의 맥락에 불과하다. 어느 부분은 현재의 우리 것이기도 하고 또 어느 부분은 아니기도 하다. 현재도 그렇지만 동북아시아 속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총체적 관련 아래 규명해나가야 하듯이, 고조선의 출현은 대륙의 과거속에서 주목할 만한 큰변화였다. 고조선의 건국은 그러므로 민족 정기의 열정에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 따위의 것이 아니라, 원시공동체가 분해되고 신분 계급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생산관계가 변화되어 드디어는 그 지배 이념으로서 단군 설화가 나타나는 것이겠다. 실상 당대의 중국 고대 사회나 고조선사회가 목가적인 평화의 세계가 아니었음은 백성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과, 집단적인 노예 노동, 순장과 인육제의 예에서도 볼수 있으며, 무덤과 부장품의 엄청난 물량과 차이, 벽화의 생활상에서도 쉽사리 추측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고조선의 건국이 역사적 발전단계를 역행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삶은 모순의 출발이다. 인간의 삶이 세계 도처에서 나름대로의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 있듯이, 고조선의 건국도 연대기와 왕조의 흥망성쇠에 의하여 역사적 단계를 밟아나온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숱한 인간의 피와 땀과 노동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백두산」이란 제목은 신문 연재용의 다분히 시사적인 제목이 되는 셈이며, 「소설 민족생활사」가 가장 걸맞는 제목인듯 하다)아쉽기는 하지만 과거의 찬란한 민족의 영광이라든가 신비스러운 경문이나 성전에는관심이 없으며, 민적 자주의 위기를 민족에 대한 찬가와 신비주의로 때우려 하는것 보다는 각각의 시대마다 일하고 밥 먹고 훌쩍거리며 살아온 숱한 이땅의 사람들이 어떻게 각각의 시대를 그만한 역량으로 맞서서 이겨나갔는가를 그려낼 일이다. 같은 이유로 식민사관의 탈피를 내세우면서 번지고 있는 요즈음의 고조선 열기는 차갑게 재고되어야만 한다. 영토와 민족과 영광스러운 민족문화에 대한 무한대한 팽창은 현재의 갈등과 고통에 찬 역사적상황의 주인인 당대인이 주체적으로 위 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현재의 한반도의 역사가 중국 동북부의 거대한 대륙의 과거에 그 맥락은 닿아 있으되 냉정하게 슬픔과 격분을 삼키고 돌이켜 본다면 요만큼의 영역에서도 제대로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다. 반대로 용케도 견디어 왔다는 자긍심과 용기도 생겨날 일이다.
고조선의 건국은 아마도 내부적으로는 부족간의 모순과 신분이 발생하면서 다른 종족들과의 갈등과 자극이 심해진 결과일 터이다. 언덕이라는 고대 알타이 말에서 빌어온 이름인 덕이라는 인물의 등장은, 이 산문의 입장이 될 부수적 인물의 창조와 그의 시각에서 역사를 용해하여 서술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덕이라는 고대인의 시각은 그러한 원시사회의 분화의 시대에 있었음직한 전생을 통하여,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은 국가의 발생 요인들을 짚어 나가는게 편리할 것같다. 그의 출생에서 시작된 통과의례들, 개인수련·성년식·결혼·단군 무리들과의 만남, 마을 촌장의 아들에서 다른 부족의 피정복 노예로, 그리고 그가 겪어 나갈 일생을 통하여 변동하는 원시사회를 드러내 보이게 될 것이다. 사람을 즉사시키고 절대로 부상으로 끝나지 않게 날카로운 동검에 혈조를 파고 중간에서 양날을 넓적하게 벌려 놓은 비파형 동검과, 수많은 농기구의 집합과, 거대한 돌무덤들이야말로 덕이의 고된 삶의 상징물들이면서, 하늘과 땅과 홍익인간을 내세운 고조선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냉정히 이해하게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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