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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미 대선 후보와 박근혜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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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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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단순히 같은 여자라고 해서 여성 대통령과 여성 대통령 후보가 공통점이 많을 것이라고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각기 휘말린 스캔들은 자연스럽게 둘을 비교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실 측근 문제, e메일과 보안, 대(對)기업 관계와 부패 같은 몇 가지 수사 대상은 닮은꼴이다.

현 정부 정책결정과정 문제는
취임 후부터 계속 제기됐다
횡령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기업들이 정부에 기대한 대가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미 양국이 처한 상황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우선 측근과 어떤 관계인지 따져본다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꼼꼼한 정책통(policy wonk)’으로 알려졌다. 남편인 빌 클린턴과 마찬가지로 힐러리는 정책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긴다. 그는 정보를 스폰지처럼 흡수하며 견해가 명확하다. 그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혁신에서 개헌까지 여러 가지 구상을 개진했다. 하지만 정책은 박 대통령이 강한 분야는 아니다. 한국 스캔들에서 충격적인 점은 대통령이 단 한 명의 사람에게 강력한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인물은 정치나 정책에 대한 지식 수준이 의심스럽다.

기밀에 대한 접근 문제는 보다 비슷하다. 힐러리 클린턴과 박 대통령은 부주의하게 기밀을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두드러진다. 클린턴의 경우 발견된 소수의 기밀 e메일은 명백히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경우 다양한 문건이 최순실씨와 의도적으로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최씨는 정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 같은 핵심 국가안보 이슈까지 포함되었을 수 있다.

재단은 두 여성 지도자의 정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재단 문제에서도 미묘하지만 상당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클린턴 재단은 빌 클린턴이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다양한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이었다. 그가 집중한 문제는 빈곤과 경제 발전, 특히 공중보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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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충돌(conflicts of interest)’ 문제와 관련해 클린턴 재단에 대한 비난의 근거는 의외로 빈약하다.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일한 당시의 재단 e메일 수백 개가 공개됐지만,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부에 대한 대가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반면 미르와 K스포츠의 공식 목표는 처음부터 불분명했다. 한국의 문화·예술·스포츠를 위한 사업에 기업의 지원을 받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들 재단이 설립된 속도는 의문을 낳았다. 처음부터 진정성 있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재단이 뭔가 다른 것을 위한 외양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다.

한국 언론과 검찰은 최순실씨에 의한 기금 횡령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횡령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기업들이 현직 대통령의 요청으로 설립된 재단에 기부하는 대가로 무엇을 기대했느냐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돈 씀씀이가 후하다. 돈을 기꺼이 내놨을 수도 있지만, 두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금을 갈취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갈취도 문제지만 이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기업들이 대가를 기대했을 가능성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야만 기부하면서 무엇을 바랐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굴지의 기업들이 지극히 의심스러운 용처로 돈을 보냈다는 증거가 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곤경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그의 곤경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치의 심각한 양극화와 클린턴 부부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힐러리에게 불명예를 안기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의회 조사를 실시하게 될 수도 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100% 떳떳하지는 않다. 개인 e메일 서버를 사용한 것은 자만심의 산물이었다.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10만 달러 이상을 받고 강연을 했다. 금융 산업을 대할 때와 국민을 대할 때 그는 기꺼이 다른 입장의 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당면한 문제들은 훨씬 심각하게 보인다. 보다 깊은 의미에서 판단력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미국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클린턴은 자신의 정책 능력을 충분히 과시했다. 그의 공약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확실한 것은 그가 이슬람국가(IS)에서 건강보험 문제까지 모든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경우 최순실 스캔들은 현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취임한 이후 나는 내부자들로부터 반복해서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어 왔다. ‘이해의 충돌’ 문제와 노골적인 부패·횡령은 차원이 다르다. 측근에 의한 것이라도 말이다. 한국 국회의 집권당 의원들까지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최순실씨가 연루된 광범위한 권력 남용의 실상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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