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번엔 빌 클린턴 ‘석유왕 사면스캔들’ 수사기록 공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대선을 코앞에 놓고 힐러리 클린턴을 궁지로 몰고 있다.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한다고 발표해 대선판을 휘저은 FBI는 1일(현지시간)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른바 ‘사면 스캔들’ 수사기록을 전격 공개했다. 클린턴 진영에 연타석으로 수류탄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15년 전 후원금 받고 사면 의혹
FBI “정보공개법 따른 일상 조치”
클린턴 진영 “대선 직전 희한한 일”
코미 FBI국장 정치적 의도설 나와

기사 이미지

제임스 코미(左), 마크 리치(右)

FBI는 이날 빌 클린턴이 2001년 대통령 임기 마지막날 탈세 등의 비리로 해외에 도피해 있던 억만장자 마크 리치를 사면 대상에 포함시켜 수사에 나섰던 당시 기록을 FBI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고 알렸다. 리치는 사기, 조세 포탈, 북한 등과의 불법 거래 등으로 기소됐다가 스위스로 도망친 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면 조치로 풀려났다. 그런데 리치의 전 부인이 클린턴도서관 및 힐러리 클린턴의 2000년 상원의원 선거 캠프에 후원금을 냈던 게 드러나며 ‘후원금 사면’ ‘정실 사면’이라는 거센 역풍을 불렀다. 당시 법무부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 것으로 수사를 끝냈다.

이번에 공개된 수사 기록은 129쪽 분량이다. FBI는 정보공개법에 따른 일상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클린턴 진영은 FBI가 e메일 스캔들 재수사에 이어 빌 클린턴에 대한 과거 수사기록까지 꺼내자 격분했다. 브라이언 팰런 클린턴 캠프 대변인은 “뭔가 이상하다”며 “FBI는 트럼프의 1970년대 흑백 주택 차별에 대한 문서도 게시하려는가”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의 하킴 제프리스 하원의원은 “대선의 중요한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데 또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CNN도 FBI가 수사 기록을 게시했던 트위터 계정은 지난해 10월 이후 게시 이틀 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휴면 상태였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FBI는 도널드 트럼프 캠프의 전 선대본부장인 폴 매너포트가 우크라이나 옛 정부의 친러 정치인들을 위해 돈을 받고 로비한 혐의를 놓고도 내사에 나섰지만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도 주류 언론에서 나왔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조치라 해도 수사 기록이 공개된 자체로 빌 클린턴의 과거사가 다시 부각되는 계기가 돼 대선에는 악재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인사는 “힐러리 클린턴도 빌 클린턴도 다 똑똑한데 뭔가 숨기는 게 많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라며 “e메일이건 사면이건 거론되는 자체가 클린턴은 못 믿을 후보라는 불신감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메일 스캔들 재조사를 지시했던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사면 스캔들 수사의 당사자였다. 코미 국장은 2002년 사면 스캔들을 수사했던 연방 검사였다. 그는 2008년 한 서신에서 리치 사면을 놓고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동시에 코미 국장은 공화당인 조지 W 부시 정부 때 법무부 부장관을 지낸 경력도 있다. 정치적 의도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다른 해석도 있다. 마이클 모렐 전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은 “코미 국장이 조직 지키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봤다. 막강 권력기관인 FBI의 자율권을 보여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그럼에도 코미 국장의 결정은 대선 개입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주류 언론에서 계속된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