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목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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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작(공작)은 작위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다. 목공이라고 하면 나무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의 나무다. 소나무를 뜻하는 「송」자는 바로 목공의 합자다. 중국 사람이 소나무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
영어로는 소나무를 파인 이라고 한다. 파인(pine)은 원래 「사모한다」, 「갈망한다」는 뜻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의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가 생각난다. 로마엔 실제로 소나무가 많다. 레오나르도다빈치 국제공항에서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키가 후리후리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제1부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보르게제 공원에 있다. 보르게제 공원은 로마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정원으로 16세기 「보르게제」추기경이 설계했다. 소나무는 로마시대에도 품위 있는 정원수로 꼽혔다. 그러나 이 소나무는 우리나라 소나무와는 좀 다르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한자 이름으론 적송이라고 쓴다. 해송(곰솔)을 흑송이라고 부르는 것과 구별해서 붙인 이름이다. 육송이라는 명칭도 마찬가지다.
「동령의 수고송」이라는 말은 바로 우리나라 소나무의 기품과 풍모를 나타낸 말이다. 산비탈 메마른 땀에도 줄기차게 버티고 서서 풍설을 이겨낸다.
그런 소나무일수록 가지도 많고 풍상을 겪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비틀어지고 솔잎도 간신히 붙어있다. 우리의 선현들은 이런 소나무를 더 볼품 있는 나무로 꼽았다.
「송뢰의 고허침」이라는 말도 있다. 소나무 숲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높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 무념무상의 경지. 그야말로 마음을 비운상태다.
화백들은 그런 소나무를 대나무와 함께 절개의 상징으로 삼아 즐겨 그린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 가사는 더 이를데 없다. 「정이품」의 지위를 가진 소나무도 있다. 정이면 지금의 관직으로 차관급. 속리산 가는 길에 서있는 삿갓 모양의 우람한 소나무.
1464년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하는데, 이 소나무의 가지가 길로 드리워져 임금의 가마(연)가 지나갈 수 없었다.
그 소나무 가지를 치려고 했더니 저절로 나뭇가지가 위로 치켜지더라는 것이다. 그 충절이 기특해 정이품의 품위를 내렸다.
옛사람들은 소나무 뿌리의 복령을 영약으로 쳤다. 고사에는 황초기라는 사람이 복령을 먹었더니 몸의 그림자가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내년 봄 식수 철엔 서울 남산에 소나무 심기 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소나무의 고사들을 생각해 봐도 좋은 착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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