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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설악산 만경대, 이대로 망가뜨리시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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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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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완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장

지난 1일 설악산 오색지구 만경대 코스가 개방됐다. 46년 만의 개방이다. 만경대 개방은 지난해 흘림골에서 일어난 산사태와 관련이 있다. 흘림골 산사태로 인해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공원사무소의 복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계속해서 크고 작은 낙석이 발생했다. 정확한 안전진단과 탐방객 안전대책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구간을 개방할 수 없었다. 흘림골 구간을 통제하자 지역주민의 생계가 문제가 되었다. 설악산과 함께 해온 지역주민들을 등한시할 수 없었기에 공원사무소도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흘림골 대체 구간으로 만경대를 시범적으로 개방하게 됐다. 20여 일간의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이 직접 나무데크·황마를 지게로 실어 나르며 임시탐방로를 조성했고, 마침내 지난 1일 개방할 수 있었다.

하루 3000명 예상해 개방했는데
1만2000명 몰려 혼잡·훼손 몸살
직원 통제, 탐방 질서 잘 따라
겨울나기 준비하는 자연 보존을

흘림골과 주전골 사이에 위치한 만경대는 그리 높지 않지만 독주암과 만물상 등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남설악의 빼어난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점봉산과 한계령도 보여 설악산의 숨은 진주라고 할 수 있다. 공단 직원과 지역주민들은 설악산의 새로운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많은 탐방객이 일시에 몰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하루 최대 3000여 명의 탐방객이 만경대를 찾을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론 이의 네 배인 최대 1만2000명이 몰렸다. 언론뿐 아니라 온 국민이 관심을 보이면서 만경대 여행 상품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산악회의 가을 산행지가 됐다.

일시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길이가 불과 1.8㎞에 불과한 만경대 임시탐방로 구간(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만경대∼주전골 입구)은 심각한 체증을 빚고 있다. 한 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었던 거리를 가는 데 서너 시간이 걸린다.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반나절 이상이 걸리고 있다. 안전사고와 무질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전국에서 몰려든 여행사와 모집 산악회는 체력이나 연령을 고려하지 않고 버스에서 내린 참가자들을 좁고 복잡한 등산로로 올려 보낸다. 이러다 보니 만경대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의 대부분이 60~70대 탐방객에게서 일어난다. 마구잡이식 새치기와 실랑이로 여기저기에서 고성이 오가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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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에서는 몰려드는 탐방객을 안내하고 통제하기 위해 입산시간 지정제를 시행했다. 만경대 구간의 탐방안내와 안전관리를 위해 안전시설을 늘리고 전 구간에 안전요원을 배치했다. 탐방안전 지도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또한 탐방로 지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경찰 및 유관기관 등과 함께 순차적 입장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탐방객을 통제하고 안내하기에 역부족이다.

만경대는 다음달 15일까지만 개방된다. 기간이 짧은 데다 단풍철이 한창이니 혼잡을 감수하고 오는 탐방객을 만류할 순 없다. 하지만 설악산 만경대를 보전하고 탐방객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탐방을 위해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먼저 만경대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도록 조금 양보해 단풍 성수기를 피해 방문하시길 권한다. 극심한 혼잡을 조금이라도 덜 겪으려면 만경대 길 입구인 용소폭포주차장이 아닌 오색약수터 입구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낫다. 그리고 현장 직원의 통제에 따라 탐방질서를 잘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탐방 예절을 갖추어 주기를 부탁드린다. 혹시 많은 인파로 만경대 탐방이 어려울 경우 설악산 가을 단풍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천불동 계곡, 수렴동 계곡, 주전골 등으로의 탐방 일정을 변경하는 것도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

사람 못지않게 자연도 존중받아야 한다. 가을 단풍철만 되면 전국의 국립공원은 몰려드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로 인해 혹독한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할 국립공원의 자연생태계는 이맘때면 늘 몸살을 앓는다. 이 때문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일시에 탐방객이 집중돼 발생하는 자연훼손 및 안전사고 등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무계단과 데크, 안전난간 등 시설물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사전에 예약을 한 탐방객만이 해당 구간에 입장할 수 있도록 하는 ‘탐방예약제’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서 탐방예약제의 효과가 입증되면 전국 국립공원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이런 탐방예약제의 시행과 성공엔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립공원을 방문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탐방객 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은 우리 사무소의 잘못이다. 하지만 지금은 탐방객 쏠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설악산 만경대를 지속 가능하게 보전하는 게 우선이다. 설악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탐방객 여러분의 협조와 동참을 호소한다.

김종완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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