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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강도 누명 벗었다" '삼례 3인조 사건' 재심서 무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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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나라수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지적장애인 3명이 17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부장 장찬)는 28일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된 최대열(37)·임명선(37)·강인구(36)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최씨 등의 자백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건 발생 후 최씨 등이 처벌을 받았지만 올해 초 이모(48)씨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 선언을 한 데다 유족이 촬영한 경찰 현장검증 영상 등을 토대로 무죄를 인정할 만한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고 본 것이다.

장찬 부장판사는 "17년간 크나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들과 그 가족 여러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재심 대상 판결이 피고인들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아마 피고인들이 자백했다는 점에 크게 주목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법원으로서는 피고인들이 설령 자백을 했다 하더라도 지적장애 등으로 자기 방어력이 부족한 약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피고인들이 자백에 이르게 된 경위나 그 내용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 또는 다른 진술들과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고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법원은 앞으로 정신지체인 등 사회적 약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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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삼례 나라수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대열(37)·임명선(37)·강인구(36)씨 등이 전주지법 2호 법정 밖에서 기뻐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재판 직후 피고인 최대열씨는 "저희 엄마·아빠가 좋은 나라, 편한 나라로 가시게 됐다"며 "무거운 짐을 내리고 이제 새롭게 출발하겠다.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명선씨는 "제가 교도소 안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제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인구씨는 "오랜 시간 동안…"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숨진 유모(당시 76세) 할머니의 사위 박성우(56)씨와 피해자 최성자(51·여)씨는 "국가는 17년 동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삼례 3인조와 유가족,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사법부가 무죄를 선고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이제 경찰과 검찰의 차례다. 어떻게 사건이 조작됐는지 진상을 밝혀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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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3인조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오늘 무죄 판결의 의미는 당사자의 억움함을 풀어주는 면이 있다"며 "이분들의 국가 배상과 형사 배상을 철저하게 진행하고 이 사건에 관련된 공무원들도 필요하다면 피고로 불러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주지검 이형택 차장검사는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전주지법은 지난 7월 삼례 3인조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최씨 등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수퍼에 침입해 유모 할머니의 입을 청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 254만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각각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이들은 지난해 3월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며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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