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제기는 남자만 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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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9일 하오1시 서울마포구 연희국민학교운동장 점심을 마친 어린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쏟아져 나와 삼삼오오 한데 뒤엉켜 놀기에 여념이 없다.
남자어린이와 여자어린이들이 편을 갈라 닭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혼성팀을 구성, 발야구를 즐기는 무리도 눈에 띈다.
『여자아이들은 폭력(반칙이란 뜻)을 썼다고 지적하면 순순히 다시 해요. 그런데 남자아이들은「언제 그랬느냐」고 꼭 시비를 걸어요.』한바탕 닭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나뒹굴고만 이혜선 어린이(10·연희국교4년)가 상대방 남학생에게 눈을 흘기며 하는 말이다.
남자는 공기놀이, 여자는 제기 차기로 종래의 놀이 주체를 완전 뒤바꾸어 버린 요즘 세대들은 학업은 물론 반장선거, 심지어 팔씨름에서도 서로 당당히 맞서 자웅을 겨룬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여자 애들이 더 답변을 활발히 해요.』 남학생 28명, 여학생 28명이 있는 자기학급에서 한두명을 제외하고 말싸움·팔씨름에서 다 이긴다는 이정하 어린이(12·연희국교6년)는『오히려 남자애가 수줍음을 탄다.』고 들려 준다.
『요즘 여자 애들이요? 걸핏하면 남자애들에게 막 대들어요 지난번 시험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여자를 누르고 우리 남자가 1등을 했어요.』이영주 어린이(10·연희국교4년)는 『꼬집기·울기·할퀴기를 잘해서 폭력은 여자가 우수하지만 공부만은 남자가 우수하다』고 나름대로의 분석까지 곁들인다.
『여자 애들이 오히려 남자들을 막 때려줘요. 그러면 남자애들은 「여자니까 봐주자」고 그래요 그렇지만 실제로 싸운다면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요.』제기차기 기록이 56개라는 김선경 어린이(10·광희국교4년)의 「배짱 두둑한」얘기 이처럼 서로 상대방에게 뒤질 것 없다는 동등의식이 어쩔 땐 치열한 경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컨대 반장선거나 회장선거 등 굵직한 감투(?)가 걸려있을 때 서로 단합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험 때는 서로 자기 그룹에서 1등이 나오도록 격려도 하고,1등 한 친구에게는 그룹에서 돈을 모아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한다.
『1학기 때는 남자가 반장·회장을 모두 휩쓸었지요. 그런데 2학기 때는 회장자리를 그만 여자에게 뺏겼어요 왜 그런지 아셔요? 여자 애들이 똘똘 뭉쳐 표를 몰아주었거든요.』그래서 남자가 여자보다 2명이 많은데도 회장을 놓쳤다고 이영주 어린이는 안타까워한다.
『우리 집 애는 치마보다 청바지가 좋대요 애들 친구를 봐도 바지차림이 많아요. 일전엔 야구방망이를 사달라고 해서 아주 혼이 났어요. 홈런 치는 게 딸애의 소원이라 나요.』 조경숙씨(38·중구신당동)는 과연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확신이 안서는 때가 종종 있다』며 조심스런 낯빛.
이같은 경향에 대해 연희국교 이원구교감은 시대적 환경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그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은 복장의 변화. 점퍼에 바지차림의 캐주얼풍조는 특히 2차 성징이 뚜렷치 않은 국교생의 경우 성별에 따른 구분을 없앰으로써 생활습관놀이 언어에 이르기까지 그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또 여교사의 수가 남교사의 수보다 많은 학교들이 늘어가고 있는 사회적분위기도 크게 작용을 하리라는 것이다.
『여자애들이 피구를 할 땐 같이 하고싶어 끼어 달라고 하지요 제가 만든 가오리연방패연을 여자애들에게 빌려주었다가 「잘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 생각엔 남자와 여자는 성격면에서 차이가나는 것 같아요.』이광열어린이(12·광희국교6년)의 말은「함께 사는 지혜」를 담고있는 것 같이 여겨질 정도로 으젓하다.<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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