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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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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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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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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는 ‘거대’의 동의어다. 공룡과 비슷하다. 지난 24일 대전시 천연기념물센터에서 개막한 ‘매머드 기증표본 특별전’. 엄니(상아) 하나가 2.29m에 이른다. 한눈에 봐도 날카롭고 웅장하다. 또 넓적다리 길이는 1.15m, 웬만한 유치원생 키다. 재일동포 박희원(69·일본 나가노현 고생물학박물관장)씨가 문화재청에 기증한 1만여 년 전 신생대 포유동물 화석 중 하나다. 기증품 1300여 점 중 대표작 30여 점이 나왔다.

전시장은 상상력을 북돋운다. 관객이 직접 보고 만져 볼 수 있다. 어린이들 과학교육에 안성맞춤이다. 매머드 이빨 표본의 경우 아기 때부터 어른 때까지 단계별로 진열해 놓았다. 매머드는 평생 6번 이빨을 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큰 이빨이 나온다. 마지막 여섯 번째 이빨은 30㎝에 달한다. 국내 최초로 매머드 피부조직도 공개됐다. 박 관장이 1994년부터 3년간 시베리아에서 직접 발굴한 것이다.

신생대 빙하기를 활보했던 매머드는 왜 멸종했을까. 일반적으로 기후변화를 든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매머드의 주요 먹이인 시베리아 초원지대 식물이 급감했다. 인간의 과도한 사냥도 결정적 요인이다. 1만4000~1만 년 전 매머드가 빠르게 사라진 시기와 인간이 급격히 늘어난 시점이 일치한다. 석기시대 인류는 매머드 한 마리에게서 토끼 1000마리의 고기를 얻었다고 한다.

최근 석기시대란 말이 회자됐다. 청와대 연설문·기밀정보 등이 최순실씨에게 미리 넘어간 것에 대해 야권은 “석기시대에나 있음 직한 국정 농단”이라고 비판했다. 대명천지가 거꾸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지난주 문서 유출·수정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다”던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의 변명도 현실이 됐다. 한국 기록문화의 정수인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임금이 생전에 문서를 열람하는 것을 금지했다.

‘최순실 파일’은 우리 시대의 매머드를 돌아보게 한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통치자 1인에게 집중된 거대 권력의 폐해가 드러났다. 빙하기 매머드가 ‘나만 옳다. 나부터 살자’는 인간의 욕심에 의해 스러졌다면 권력 독점이란 지금 여기의 매머드는 ‘너도 옳다. 함께 나누자’는 순리로 풀어야 한다. 물론 핵심은 소통이다. 비선(秘線)은 독선을 부른다. 어제는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7년이 되는 날. 안 의사 유묵(遺墨) 중 ‘통정명백광조세계(通情明白光照世界)’가 있다. ‘서로 환하게 통하면 세계를 비춘다’는 뜻이다. 역으로 내통(內通)은 세상을 검게 물들인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