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정치 개입이 불씨-시위학생 승리로 끝난 불 교육개혁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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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홍성호 특파원】10여일간 프랑스 국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었던 학생시위는 교육개혁안을 내놓았던 정부측이 일방적으로 이를 철회함으로써 시위군중에 승리가 돌아갔다.
「시라크」수상은 8일하오 국민들에 자제해 줄 것을 호소하는 한편 문제가 됐던 고등교육개혁방안 심의를 무조건 백지화하겠다고 후퇴했다.
교육개혁안을 제안했던 장본인인 「드바케」교육성차관 또한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이로써 프랑스 정부는 지난 3월 집권이후 가장 큰 시련을 가까스로 극복하기는 했으나 의견충돌을 빚었던 쌍방이 서로 문제의 불씨를 그대로 안고 있다는 점에서 정국변화의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학생시위 과정에서 1명이 숨지고 2백여명이 다친 불상사가 빚어지자 학생들 측은 근본적인 교육개혁문제를 뒷전으로 미룬 채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행사를 문제삼아 노조측과의 연대파업에 들어갈 태세이고 정부일각에서는 또 그 나름대로 이번 시위가 좌익 극렬분자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몰아붙여 서로간의 감정대립이 체2의 충돌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예각의 대결상태 그 자체보다도 그같은 현실을 야기시킨 프랑스 교육체계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다.
교육개혁을 들고 나온 우익정부는 오늘날의 대학이 고급실업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영·미·서독 등에 비해서도 그 질적 수준이 낮아지고 있어 획기적인 방향전환이 불가피 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당국은 이에 따라 성격이 좋지 않은 학생은 입학과정 에서부터 도태시키고 대학에 적을 둔 후라도 학업에 열성이 적은 경우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학이 직접 개입하여 탈락시킴으로써 보다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는 의사를 갖고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입장은 이와 사뭇 다르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는 프랑스만큼 훌륭한 제도를 이미 갖고 있는 나라가 드물고 여기에다 새로운 임시제도나 진학절차를 마련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실업자를 낳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각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주거나 대학등록금의 신설조치 등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대학교육 이념에도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순수한 논쟁으로 결말지을 수도 있을법한 이 같은 의견대립이 거리의 시위와 폭력 진압사태로 번진 것은 이념실현에 앞서 정치적 개입을 서둘렀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비판세력들은 「시라크」정부가 들어선 후 사회당이 그 동안 추구해온 정책에 「반대를 위한 반대」로 국영기업 민영화·교육개혁 등을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집권층에서는 이번 학생들의 시위경우처럼 「순수한 견해차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 극단적인 좌익분자들의 책동」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다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
아무튼 「시라크」정부는 지난 주말 소르본 대학의 초토화작전에 성공했으나 그 후유증이 의외로 심각하게 나타나자 68년의 악몽을 되새기기라도 한 듯 솔선하여 자중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경색된 정국을 헤쳐 나가는 프랑스 정부의 지혜를 지켜보아야 할때는 지금부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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