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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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부녀자 30여명이 철거반원을 밀치고 포클레인의 작업반경안으로 뛰어들었다. 굉음을 울리던 포클레인의 움직임이 멎었다.
『밀어붙여!』
지휘자의 구령. 1백여 철거반원들은 『와』하는 함성과 함께 부녀자들을 밀어쓰러뜨린 후 4명이 한사람씩 팔다리를 들고 저지선 밖으로 들고나갔다.
6일 낮12시15분쯤 서울상계동4∼1지구 재개발지역.
대설을 하루 앞둔 영하의 거리에서 벌어진 철거대상 세입자중 마지막까지 남은 40여가구와 철거반원의 몸싸움.
시위진압차 전경 1개중대를 인솔하고 출동한 관할 태능경찰서 간부도 법을 들먹이며 철거민들을 무법자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세입자 대책위원회 나종관씨(37)는 상계동에 세입자들이 이주할수 있게 시유지를 불하해주거나 지금같이 살 수 있는 다른 대책을 세워달라는 것이 요구. 6월이후 계속돼온 철거반대시위로 세입자대표 5명은 구속된 상태.
그래도 아직 40여가구가 남아 헐린 판자집터에 임시천막을 치고 매일같이 항의시위를 계속한다.
『모두들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상계동철거형제 울부짖던 날 손가락 깨물어 맹세하면서…』
철거반원에 밀려난 부녀자들이 다시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서서 노래를 부른다.
학생들의 시위노래가사를 바꾼 노래. 한겨울의 판자촌 폐허.
『추운 겨울이나 지나고 헐지.』-나이든 철거반원의 혼자말이 불꽃처럼 가슴에 와닿았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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