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대통령"…박 대통령의 개헌 관련 과거 발언들

중앙일보

입력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 추진 발언을 두고 박 대통령의 과거 개헌 관련 발언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5년차 개헌론에 "국민이 불행" 비난
2012년 대선 후보 때 "4년 중임제 개헌" 공약
취임 후 "경제 위기" 내세워 개헌논의 차단

대표적인 건 2007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발언에 대한 평가다.

국회의원이었던 당시 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4년 중임제로 개헌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맹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보이느냐.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하면 블랙홀처럼 모든 문제가 빨려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또 "대선후보가 확정되면 개헌안을 만들어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은 뒤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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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당시 주요 대선 후보들의 평가(빨간색 화살표)와 이전의 개헌 관련 발언들(파란색 화살표). [중앙일보 DB]

참 나쁜 대통령…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보이나" (2007년 1월)

다른 대선 주자들도 대부분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지지율 급락과 권력 누수(레임덕) 등 임기 말 수세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노림수를 갖고 개헌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개헌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게 당시 정치권의 반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지도 못하고 소멸됐다.

이후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11월에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민 기본권 강화를 골자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당선 뒤에는 "개헌 논의는 국정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경제회생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개헌 요구를 미뤘다. 2014년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가 궤도에 오르게 해야 할 시점에 이런 것으로 또 나라가 다른 생각없이 여기에 빨려들면, 이 불씨도 꺼지고 한 번 살려내기도 힘든데 경제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제 위기 풀어야지, 염치가 있는 거냐" (올해 1월 대국민담화 기자회견)

같은 해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기간 표류하던 국회가 정상화돼 이제 미생법안과 경제살리기에 주력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그 어떤 것도 경제살리기에 우선할 수 없다"고 개헌 논의를 봉쇄했다.

지난해 1월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개헌으로 모든 날을 지새우면서 경제활력을 찾지 못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개헌은 국민적인 공감대, 또 국민의 삶에 도움이 돼야 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올해 들어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을 때에도 부정적인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올 1월 13일 대국민담화 기자회견에서도 "경제가 발목 잡히고 나라가 한치 앞이 어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개헌을 말하는 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우리 상황이 블랙홀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여유있는 상황이냐? 청년들은 고용 절벽에 처해 하루가 급한 상황에서 이러한 것을 풀면서 말을 해야지, 염치가 있는 거냐"고 불가 입장을 분명히했다.

4월 26일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 간담회에서도 "경제를 살리고나서 공감대를 형성해서 해야지,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 경제가 살아났을 때 국민들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해서 공감대를 모아서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게 저의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 경제 튼튼해지고 원칙 뿌리 내려"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

그 동안 발언을 종합해보면 개헌은 시기상조란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 "경제 위기 극복이 우선"이라는 이유도 변함없었다.

개헌을 제안한 오늘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경제 위기와 북핵 문제를 위기로 꼽았다. 박 대통령은 "우리 주력산업들은 후발국들의 거센 도전에 쫓기고, 미래산업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북한 핵과 미사일이라는 실질적 위협까지 더해져 우리나라의 앞날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위기를 강조했던 이전과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위기에 대한 경고 표현이 다소 누그러졌고,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는 점이 강조됐다. 박 대통령은 "4대 부문 구조개혁의 성과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우리 경제의 기초가 보다 튼튼해지고 있다"며 "원칙이 바로 선 경제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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