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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부시에 대해 "도대체 말이 되질 않는다" 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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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전 외교부장관. 오상민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펴낸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중 정상과 북한 문제를 논하며 느낀 좌절감도 소개돼 있다.

2005년 경주 한·미 정상회담서 대북 압박 두고 직설화법 주고받아
2006년 송민순이 방미 거듭 권하자 “싫다는데 자꾸 왜 끄집어내냐”
후진타오 주석에 대해선 “중국과는 깊이 있는 대화가 돼야 말이지”

가장 긴장된 순간이 연출된 한·미 정상회담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005년 11월17일 경주에서 열린 회담이었다. 송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 문제를 탄력적으로 풀어 9·19 공동성명이 이행궤도에 들어가도록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경주 현대호텔에서 마주앉은 두 대통령의 심사는 그리 편해보이지 않았다”고 적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전투기나 미사일을 동원한 압박보다는 쌀과 비료가 북한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그런 방식의 변화 시도엔 관심이 없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은 핵 확산과 화폐 위조, 불법자금 조달을 막기 위해 한·중·일·러와 협력을 동원하겠단 게 부시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대북 압박에 가담하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반박과 부시 대통령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노 대통령=“지금 각하와 나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 안에서는 6자가 회담을 하면서 밖에서는 압박을 행사하면 북한은 미국이 결국 자신을 붕괴시키려는 것으로 볼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북한은 문을 걸어잠그고 변화를 거부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세계에서 미국 돈을 가장 많이 위조하는 북한을 두고 보란 말인가. 만약 누군가가 한국 돈을 위조하고 있다면 그냥 두겠는가”
▶노 대통령=“(9·19 공동성명 직후 미국이 BDA 문제로 대북 금융제재를 가한 것은)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대북 압박이 6자회담에 오히려 지장을 초래한다면 전략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북한은 이라크처럼 될 것이란 공포를 갖고 있다.”
▷부시 대통령=“미국의 법 집행과 6자회담은 별개의 문제다. 이라크는 전혀 다른 경우인데 북한은 미국에 모든 탓을 돌리고 있다.”

두 정상이 직설적으로 할 말을 한 뒤 노 대통령은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서 “각하는 북한에 대해 전략적 고려나 전술적 접근보다는 철학적으로 김정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맞다. 나는 싫다면 싫다. 둘러대는 사람이 아니다. (북한 문제에 있어)내가 ‘악한 역’을 맡고 노 대통령이 ‘착한 역’을 해서 협력하자”고 말하며 화제를 매듭지었다.

그 사이 양 측 배석자들은 두 정상의 대화가 어디로 흐를지 몰라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2008년 대사 임기를 마치고 서울을 떠나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를 “외교관 생활 중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송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집착하며 장애를 뚫어보려는 의지로 가득 차있었다. 감정보다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감정적이면서도 직선적이었다. 한마디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투였다. 이를 지켜보면서 통나무에 납땜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대화란 생각이 들었다. 두 대통령은 이 회담을 계기로 서로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강이 있단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훗날 이 회담을 언급하며 송 전 장관에게 “부시와는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했다.

경주 회담의 ‘악몽’이 노 대통령에게 깊이 각인된 듯한 상황도 회고록에 등장한다. 2006년 3월 초부터 송 전 장관은 노 대통령에게 미국 방문을 권했으나, 노 대통령은 “부시와 만나봐야 서로 말이 되지 않는다. 만나면 오히려 거리만 더 멀어질 것”이라며 거부했다. 5월 또다시 방미 이야기를 꺼내자 노 대통령은 “송 실장(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은 대통령이 싫다는 일을 왜 자꾸 끄집어냅니까. 왜 대통령한테 이기려고 해요”라고 정색을 했다고 한다.

송 전 장관은 5월 하순 다시 방미 필요성을 정리해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자 다음날 노 대통령이 집무실로 그를 부르더니 “보고서 다 봤습니다. 왜 자꾸 대통령을 갋으려 합니까?”라며 담배를 물었다. 이에 송 전 장관이 “만약에 이번에도 부시 대통령을 만났는데 또 실망하시면 다녀와서 저를 잘라버리십시오. 안보실장을 믿고 미국까지 갔는데 마음에 안들었으니 그 책임을 물으시면 될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 정말 귀찮아서 안 되겠네. 그래 한번 가봅시다”라며 승낙했다.

노 대통령은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북핵 관련 협력을 논하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송 전 장관은 “내가 안보실장으로 있을 때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로 수차례 후진타오 주석과 통화했다. 대통령은 통화 뒤 수화기를 놓으면서 ‘중국과는 무슨 깊이있는 이야기가 돼야 말이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고, 참…’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적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인 11월17일 노 대통령과 후 주석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베트남 하노이에서 회담했다.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지 못할 경우 어떤 방안이 가능하겠냐고 타진했다. 후 주석이 원론적인 답만 반복하자 “실제 중·북 사이에서 어떤 일이 오가는지 솔직히 궁금하다”고 직설적으로 묻기도 했다. 하지만 후 주석은 “북·미 양측의 불신이 심각한 상태에서 한국이 독특한 지위를 이용해 양측을 설득하길 기대한다”면서 피해갔다. 이 때도 노 대통령은 “손에 잡히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면서 답답해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다음날 부시 대통령을 만나 후 주석과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중국으로선 이웃집에 불이 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대북압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데, 우리는 이웃이 아니라 북한과 바로 아래위층에 사는데 얼마나 어렵겠느냐”고 토로했다고 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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