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정화시키는 참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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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9면

매주 월요일 오전 9시가 되면 원광대 법당에서는 교수와 직원이 하나가 되어 법회를 본다. 평소 바쁜 일로 법회 참석을 못한 교도들도 마음의 양식과 수행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학교 법당에는 몇 명의 교무님들이 근무하는데 차례로 돌아가며 법회를 진행하고 법문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노트에 법문을 적었다. 법회는 마음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지난 월요일 아침에 법회를 보는데 사회자는 “내가 지난날 나도 모르게한 잘못된 말을 참회합니다. 내가 지난날 해야 할 말을 안 한 것을 참회합니다. 내가 지난날에 나도 모르게 잘못 생각한 것도 참회합니다. 내가 지난날 내가 해야 할 생각을 못한 것을 참회합니다. 내가 지난날 나도 모르게 잘 행하지 못한 일을 참회합니다. 내가 지난날 더 잘 행하려 하지 못함을 참회합니다“라고 의미 깊은 심고를 올렸다.


참회는 어찌 보면 자신을 정화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아닐까. 가끔 누군가 “참회 합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참 오랜만에 신기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나도 생각해 보면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했던 생각과 행동 중 참회할 일이 108염주를 몇 번 돌려가며 할 정도로 쌓였을 수도 있다.


아마 30년이 흘렀는가 보다. 그때 동창들이 만나면 자신이 근무하는 교당의 법회상황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자랑이었다. 그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국립대학교 부총장이신 교도 분이 항상 법당의 중간자리에 앉아 법회를 보았다. 그분은 부교무의 별 재미없는 법문과 교리도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다 노트에 진지하게 적었다고 했다. 연세도 있으시고 어찌 보면 아들 같은 교무의 법설인데도 진지하게 듣고 메모 하시곤 했다는 거였다.


법회가 끝나면 그 교도님은 말 없이 다가와 “오늘 법회 참 잘 들었습니다. 교무님 성불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시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는 거였다. 그 덕분에 초짜 교무는 법회시간만 되면 신이 나서 이 소리 저 소리 잘난 소리를 했고 마치 자신이 중국 선 불교의 철저한 고행의 수도승처럼 설교를 했던 것을 지금 생각해 보니 얼굴이 뜨겁다고 말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마음에 참회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살면서 참회할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매우 성숙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정화되어야 하고,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이고 맑은 자신을 유지하는 공부길이 아닌가.


정은광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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