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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70만 년 전 동해, 정동진에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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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7일 공개되는 해안단구

“정동진 해안단구(海岸段丘)를 보면 70만 년 전 동해안의 경관까지 상상할 수 있다. 이곳은 한반도 땅이 얼마나 상승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 지질학적 가치가 굉장히 높은 곳이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암석이 만든 지형
해안경비 이유 군에서 통제하다 공개

45도 각도로 시루떡처럼 쌓인 모습
투구·부채 등 갖가지 기암괴석 자랑

길이 2.86㎞ ‘정동 심곡 바다부채길’
1시간10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어

지난 11일 오전 10시30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 이곳은 ‘정동심곡(深谷) 바다부채길’ 입구다. 높이 약15m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따라 해안가로 들어서자 비석을 45도 각도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절벽과 암석들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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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곳곳에 보이는 절벽들은 마치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있는 대형 선박,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군중의 모습 등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란 이름으로 오는 17일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동해안 정동진 해안단구(천연기념물 제437호)를 기자가 미리 둘러봤다.

정선홍 강릉시 해양수산과 연안관리계장은 “탐방로를 걸으며 순간순간 펼쳐지는 바다와 절벽의 비경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며 “안보를 이유로 통제해 온 이 구간이 열리면서 동해안의 절경을 많은 국민과 나눌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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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대 쥐라기부터 백악기 초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지각 변동인 대보조산운동의 영향을 받아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강릉시 강동면 심곡항 주변 암석들. 대형 선박이 침몰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사진 박진호 기자], [사진 강릉시]

해안단구는 자연적인 원인으로 특정 지역의 땅덩어리가 상승해 계단 형태로 만들어진 지형을 말한다. 국내에선 이번에 처음 개방되는 정동진 해안단구가 대표적이다. 탐방로가 생긴 곳은 해안단구의 끝부분과 바다가 맞닿는 지점이다.

이곳은 기반암이 해안으로 돌출한 암석 해안이다. 일부 구간 절벽은 해발 고도가 60~70m나 된다. 일부 암반에서는 직경 2~3㎝ 크기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데 이 구멍은 바닷조개가 판 것으로 흔적화석 또는 생흔화석(生痕化石)이라 불린다. 전문가들은 이 화석을 토대로 이 지역이 수십만 년 전에는 바닷속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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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조산운동의 영향을 받아 기울어진 암석 사이에 야생화인 해국이 피어 있다. [사진 박진호 기자], [사진 강릉시]

장호(70) 전북대 사범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는 “제4기(약 2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기)의 한반도 지반 상승은 1만 년에 1m로 추정된다”며 “이 해안단구면은 70만 년 전에는 해수면에 있었지만 오랜 기간 자연현상을 거치면서 상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폭 1.5m 탐방로를 따라 1㎞가량 이동하자 ‘투구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이 바위는 투구를 쓴 장수가 양손을 올리고 전투 자세를 취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선홍 계장은 “장수가 투구를 쓰고 해안경비를 서는 듯한 모습과 흡사해 투구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말했다.

투구바위 주변 암석들은 주로 사암(砂岩)과 규암(硅岩), 셰일(shale) 등으로 형성돼 있다. 대부분의 암석들은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장호 교수는 “이 암석들은 중생대 쥐라기부터 백악기 초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인 대보조산운동(大寶造山運動)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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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심곡 바다부채길’ 탐방로에서 볼 수 있는 정동진 해안단구 풍경. [사진 박진호 기자], [사진 강릉시]

이곳에서 0.86㎞를 이동하자 ‘부채바위’가 보였다. 부채바위는 마치 부채를 펼쳐놓은 듯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엔 유명한 전설도 있다. 200여 년 전 이 마을 한 노인의 꿈에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왔다는 한 여인이 나타났다. 이 여인은 “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방에서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했다. 노인은 배를 타고 부채바위 인근으로 갔고 그곳에서 나무 궤짝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여인의 화상(畵像)이 있었는데 노인은 서낭당을 지어 이 화상을 정중히 모셨고, 이후 이 마을엔 풍어(豊漁)가 이어졌다고 한다.

부채바위 전망대에선 양방향 해안단구 전망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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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바위 전망대에서 심곡항 방향을 보면 수십 대의 미사일 포대가 설치된 듯한 암석을 볼 수 있다. [사진 박진호 기자], [사진 강릉시]

전체 거리가 2.86㎞인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2012년 5월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인 ‘동서남해안 초광역 개발권 중점사업’에 선정되면서 조성됐다. 명칭은 109개 후보작 중에서 강릉 출신의 소설가 이순원(58)씨의 제안이 채택됐다.

이 길은 그동안은 해안경비를 위한 군인 경계근무 순찰로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사업 선정 이후 국방부·문화재청 등과의 협의를 거쳐 지난해 1월 착공해 70억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했다.

대부분 구간이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1시간10분이면 전 구간을 둘러볼 수 있다. 오전 9시에 개장한다. 여름철엔 오후 5시30분, 겨울철엔 오후 4시30분부터 접근이 통제된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전국 제일의 절대 비경을 품은 해안 산책로”라며 “동해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동해시 대진항, 완도군 소안도 등 여러 곳에 해안단구

해안단구(海岸段丘)는 침식 또는 퇴적 작용으로 만들어진 평평한 해저가 해면이 내려가거나 땅이 상승하는 이수(離水)를 통해 땅 위에 나타나면서 생겨나는 계단식 지형이다. 해성단구(海成段丘)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리 말고도 곳곳에 해안단구가 있다.

강원도 동해시 어달동~대진항으로 연결되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 단의 단구면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어 파랑에너지가 집중돼 완만하게 경사진 평탄한 암반 면인 파식대(波蝕臺)가 잘 형성된다.

이러한 파식대에 파랑이 운반한 돌이 해안을 따라 퇴적된 뒤 제4기(약 2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기) 한반도 지반 운동으로 지금의 해수면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여러 단의 해안단구면이 형성됐다.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도 해안단구가 있다. 이곳 해안단구는 서남부 해안 일대 제4기 지반운동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형 자료다. 완도읍 화흥리에 있는 화흥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45~50분 정도 가면 소안도에 도착할 수 있다.

23.16㎢ 면적에 해안선 길이 42㎞인 소안도는 비교적 큰 섬이다. 완도에서 남쪽으로 약 188㎞ 지점에 있는 이 섬은 노화도·보길도·횡간도·당사도 등의 섬과 함께 소안군도를 이룬다.

강릉=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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