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변신의 성공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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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오락영화의 간판스타인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은 『칼러 퍼플』 을 통해 그 동안 추구해오던 환상과 모험의 세계 대신 심각한 인간문제를 테마로 삼았다. 이번에 노린 것은 「재미」가 아니라 「감동」 이다. 그 스스로도 『「칼러 퍼플」은 나의 감독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제작노트) 라고 강조했다.
『칼러 퍼플』 은「스필버그」의 이 같은 변신과 의욕이 일단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장장 2시간 반 동안 서사시처럼 펼쳐지는 휴먼 드라머가 감동을 안겨준다.
흑인여성작가 「앨리스·워커」 가 쓴 동명소설은 지난83년 퓰리처상과 전미 도서 상을 수상, 큰 화제가 됐었다.
영화만 보아서도 이 소설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얘기를 담았는지 알 수 있다. 한 흑인여성이 겪는 기구한 운명에 눈물짓지 않을 지구인은 없을 것이다.
20세기초 미국남부의 한 농촌이 무대. 여주인공 「셀리」 (후피·골드버그」 분)는 10대부터 40대까지 30여 년 동안 노예보다 더욱 비참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남편 정부의 도움으로 서서히 자아에 눈뜨기 시작, 드디어는 인간회복을 선언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운명에 순응할 줄 밖에 모르던 무지한 여성에 씌워지는 불행의 굴레는 상상을 뛰어넘어 충격적으로 묘사된다.
「스필버그」 는 이 처절한 인생역정을 리얼하면서도 시정 넘치는 영상으로 펼쳐나갔다. 곳곳에 「스필버그」특유의 잔재주와 재치가 번뜩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정통적 연출기법을 보였다.
주인공이 아기를 낳자마자 빼앗기는 장면, 여동생이 그녀의 집에서 쫓겨나는 장면 등은 오래오래 기억될 만 하다.
영화는 주인공 자매가 뛰노는 진홍빛 (Color Purple) 꽃밭장면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이 꽃밭은 이들 자매의 행복의 상징.「스필버그」 다운 재치 있는 설정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갈수록 군더더기가 많아 흐름이 산만하고 지루해졌다. 주변인물들의 묘사가 주인공에 대한 촛점을 흐린 결과를 낳았다.
브로드웨이의 「스푸크쇼」(Spook Show·공옥진의『병신춤』 처럼 소외된 인간을 표현하는 모노드라머)에서 활약하다가 원작자의 추천으로 발탁된 「후피·골드버그」 의 연기력이 놀랍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만한 감동은 전해주지 못하지만 역시 「스필버그」는 거장이란 걸 실감케 하는 영화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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