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없는 로봇은 단순한 장난감에 불과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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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제조업체 스피로 창업자 이안 번스타인은 11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스타트 업콘 2016’에 연사로 참여해 스타트업의 성공 노하우에 대해 강연했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난해 12월17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깨어난 포스’는 개봉 한달 만에 세계에서 18억8854만 달러(약 2조1213억원)을 벌었다. ‘2015년 매출 순위 1위, 역대 매출 순위 3위’라는 기록도 세웠다. 영화의 대히트와 함께 주목을 받은 제품이 있다. 영화 속에서 저항군 파일럿 포 다메론의 로봇으로 나온 BB-8이다.

스피로 CTO 번스타인 방한
영화 스타워즈 BB-8 100만대 판매
캐릭터 게임 등 다양한 분야 진출
“소비자들, 기술보다 이야기에 열광
집집마다 로봇 쓰는 시대 대비 중”

스타워즈 개봉 석달 전인 지난해 9월 미국의 스타트업 스피로(sphero)가 스마트 기기로 작동할 수 있는 커넥티드 로봇 BB-8을 출시했다. 지난해 세계에서 100만 대가 팔렸다. 지난해 10월 한국에서도 출시돼 10만 여대의 국내 판매고를 기록했다. 영화 ‘스타워즈’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한 곳이 스피로인 셈이다. 2010년 9월 미국에서 스피로를 공동창업한 이안 번스타인(Ian Bernstein, 33)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1일 ‘스타트업콘 2016’에 연사로 참여해 “제품과 서비스에 스토리를 접목해야 성공한다”는 내용으로 강연한 그를 강연 후 따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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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8은 키 12.5㎝, 무게 200g짜리 로봇으로 스마트 기기로 작동을 할 수 있다. [사진 스피로]

번스타인은 스피로의 커넥티드 로봇 ‘스피로’, ‘올리’ 와 ‘BB-8’을 직접 기자에게 시연했다. 넘어질 것 같으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질주하는 BB-8의 기능을 보여주며 “몸통과 머리를 자석으로 연결하고, 달릴 때 넘어지지 않게 하는 게 어려운 기술이었다. 제작하는 데 1년 정도 걸렸다”고 설명했다.

BB-8을 내놓기 전부터 스피로는 투자자가 주목하는 스타트업이었다. 사업은 번창했지만, 소비자들은 스피로의 로봇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마트 기기로 제어할 수 있는 커넥티드 로봇도 일반적인 장난감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번스타인은 “우리 제품에 스토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7월 월트디즈니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밥 아이거 월트 디즈니 최고경영자에게 짧은 시간에 회사를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스피로와 올리에 대해 설명하던 중 아이거 CEO는 “당신의 회사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은 스타워즈에 출연하는 캐릭터였고, 그 중 하나가 BB-8이었다. “이것을 만들 수 있나”라는 아이거의 질문에 “물론”이라고 대답을 했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하루 만에 샘플을 만들어 아이거에게 보냈고 오케이를 받아냈다. 이후 1년 동안 제작에 매달려 BB-8을 만들었고, BB-8에 대한 라이선스도 받았다.

스타워즈라는 스토리와 결합한 BB-8은 대성공을 거뒀다. 지금까지 8000만 달러(898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스피로도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BB-8 성공으로 임직원이 180여 명으로 늘었고, 이제는 투자를 받지 않아도 신사업을 벌릴 수 있게 됐다”고 번스타인은 웃었다.

그는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큰 시장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장난감 시장이 80조원을 넘기 때문에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커넥티드 로봇과 함께 장난감 시장을 넘어선 다른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BB-8도 단지 로봇에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BB-8을 구매한 이들은 자신들의 재미있는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스피로는 사용자들을 위해 BB-8을 이용해 즐길 수 있는 30여 가지의 게임 앱도 출시했다. “포켓몬고처럼 스타워즈의 아이템과 캐릭터를 찾을 수 있는 게임도 출시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번스타인은 자랑했다. 심지어 스피로의 제품을 이용해 코딩 교육을 할 수 있는 SPRK 라이팅 랩(LIGHTING LAB)이라는 앱도 출시했다.

BB-8의 성공으로 스피로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A robot in every home’, 즉 가정마다 로봇이 하나씩 있는 세상이라는 비전이다. 번스타인은 “50년 후에는 집 집마다 로봇이 있을 것이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과 재미를 선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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