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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선호 말고 가려 쓰자" 외국상표 제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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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같은 국산품이라도 외국 상표가 붙어야 잘 팔린다. 백화점에 가보면 코너마다 유명하다는 외제 상표는 다 모여있는 느낌이다. 신사복· 양말· 스카프· 넥타이·와이셔츠 등 의류제품은 물론이고 구두· 가방에서 식품이나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상표만 외제인 국산품이 턱없이 비싼 값에 잘 팔리고 있다.
더구나 지난 1일부터는 기술 도입을 수반하지 않고도 외국상표 도입이 가능해짐에 따라 외제 상표는 더욱 깊숙이 국내 시장을 파고드는 실정이다.
특허청의 외국 상표 등록 현황에 따르면 현재 우리 나라에 들어 온 외국상표는 1천6백46건. 기술 도입에 따라 들어온 것도 있고 합작 투자나 원료사용 조건으로 도입된 것도 있다.
79년까지 도입된 상표는 총 3백24건에 지나지 않았으나 80년 이후 홍수처럼 밀려들어 84년 한 햇 동안에만 4백17건이 도입됐고 지난해에는 4백70건, 그리고 올 들어서는 1∼5월의 다섯 달 동안 무려 3백71건이 들어왔다.
한편 재무부는 81∼85년 5년 동안의 기술도입 건수는 1천8백1건이며 이 가운데 22· 2%인 4백 건이 상표를 수반한 도입인 것으로 밝히고있다. 4백 건 중 39%인 1백57건이 소비재 상표로 지난 1년 동안 6백50만 달러(57억8천만 원)의 로열티(상표 및 기술사용료)를 지불했다.
소비재 가운데 외국 상표를 가장 많이 쓰고 있는 품목은 섬유 제품으로 「크리스티앙 디오르」 「피에르 가르댕」 「지방시」 「이브 생 로랑」 「논노」「니나리치」 「찰즈 주르당」「닥스」 등 56개에 이른다. 특히 86· 88 양 대회를 앞두고 스포츠 의류 쪽에는「아디다스」 「아식스」 「슬레진저」 「헤드」「잭니클라우스」 10여 개 상표가 들어와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캐주얼 붐을 타고 청바지 상표 도입도 두드러져 「리바이스」 「리」 「조다시」등이 진출, 재미를 보고 있다.
여성용 의류에는 7∼8개 외국 상표가 경쟁을 벌이고 있고 남성복 상표로「런던포그」「뉴망」 「만실라스」 「닥스」등이 진출해 있다.
아동복이라고 예외가 아니며 넥타이· 와이셔츠·수영복·양말· 손수건 등 몸에 걸치는 것이면 빠짐없이 외국 상표 간판을 내걸고 있다.
「피에르 카르댕」 상표는 라이터에 처음 도입돼 사용된 이래 핸드백· 남성복·수영복·숙녀복·구두로 줄줄이 이어졌고 「이브 생 로랑」 도 드레스· 와이셔츠· 넥타이·남성복·스카프·양말 등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화장품도 외국 상표가 판치는 분야로 「랑콤」 「멘넨」 「코티」「맥스팩트」등 15개 상표가 들어와 있다. 식 음료 분야에서 외국상표 도입이 두드러진 것은 초컬릿과 패스트푸드· 아이스크림 및 청량음료 분야.
상표 도입의 댓가로 지불하는 로열티는 대부분 순 매출액 기준으로 3∼5%선. 경우에 따라서는 20만∼30만 달러의 일시불을 내고 상표를 수입하기도 하며 특별한 경우에는 일정한 금액을 착수금조로 지불한 뒤 매출액의 일부를 매년 떼 주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로열티를 물면서 상표를 사용하는 만큼 상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데 그 위에 엄청난 유통마진 때문에 가격은 높게 매겨진다. 경제기획원에 따르면 모 외국 상표 넥타이의 경우 하청 업체의 납품가격은 7천4백50원으로 상표를 도입한 업체는 여기에 납품가격과 엇비슷한 6천2백원을 얹어 1만3천6백50원에 소매업체에 넘기고 있으며 이것이 최종소비자에게는 1만9천5백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
만일 이 넥타이에 국내 상표가 붙어 유통된다면 소비자가격은 1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설명이고 보면 단지 외국 상표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1만원 돈을 더 받는 셈이다.
외국상표 제품이 국내상표 제품보다 훨씬 비싼 또 하나의 이유로 광고 선전비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한상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판매원가 중 광고 선전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국내상표의 경우 치약· 넥타이· 운동화에서 각각 13·4%, 2·4%, 7·4%인데 비해 도입 외국상표는 치약이 50.8%,넥타이 6·9%, 운동화가 11·2%로 각각 4배, 3배, l·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높은 값에도 불구하고 외국상표 제품이 국산상표 제품보다 품질이 월등하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얼마전 공진청에서 외국 상표가 붙은 와이셔츠· 넥타이·양말· 테니스 화 등을 국내상표 제품과 비교·분석한 결과 품질은 비슷한데도 외국상표 제품이 최고3·1배까지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와이셔츠의 경우 바느질·끝마무리· 내구성 등에서 차이가 없고 다림질 후의 변색정도, 세탁 후의 변형정도 등에서는 오히려 국내상표 제품이 우수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양말· 넥타이·운동화 등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업체가 품질 고급화와 수출 촉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해외 유명 상표와 기술을 도입했지만 국내소비자의 외국 유명브랜드 선호심리를 이용, 내수 판매에 치중하면서 높은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상표 도입업체는 대부분 수출은 30% (가죽 운동화 35%, 전기용품 50%)남짓의 의무 비율만 간신히 채우면서 국내 소비자에게는 수출 가격보다 2∼3배씩 비싼 값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 문제인 것은 얼마 안 되는 수출의무 비율을 채우기 위해 헐값 수출도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
지난 84년 상공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L사의 M신사복은 내수가격 (공장도) 11만2천5백원에 수출가격은 60달러(당시환율로 4만9천 원)에 불과하고 S사의 S신사복은 내수가격 7만1천 원에 수출가격은 4만1천 원(50달러) 인 것으로 나타났다.
품질 개선에는 소홀한 채 출혈 수출로 의무 비율이나 채우면서 국내 소비자에게는 외제상표를 내세워 턱없이 높은 값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업체도 문제지만 품질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외제 상표라면 무턱대고 선호하는 우리의 소비 형태에도 큰 잘못이 있다.
외국 상표가 붙은 제품을 써야 위신이 서는 것으로 생각하는 허영심이나 자기 과시욕·사치심리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외제 품이 디자인이나 색상 등에서 국산상표 제품보다 낫다.』 는 일부 소비자들의 주장에는 국내 업체들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상표도입 자유화를 맞아 국내상표를 사용하는 업체들은 제품의 디자인과 색상 등에 좀더 신경을 쓰고 품질을 고급화하는 한편 보다 세련된 고유 브랜드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당당히 국산 브랜드로 수출에 성공하고 로열티까지 받으며 브랜드를 수출하고 있는 업체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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