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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가치」높이는 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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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월은「문화의 달」이며, 20일은「문화의 날」이다. 전국에서는 1백여 개의 문화예술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때맞추어 천안에서는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가 열러 강화의「용 두레질 노래」가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더구나 올해는 아시안게임의 문화예술 축전으로 일찌감치 문화행사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온 나라가축제의 마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문화는 소비지향 적이고 떠들썩한 잔치놀음이 마치 문화의 주류인양 인식되어 있다.
한 연구소가 얼마 전에 실시한「우리나라 국민의 문화생활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9%가 1년간 영화를 한편도 본 적이 없고, 92·5%는 음악회에 간 적이 없다. 연극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람은 무려 91·5%나 되었고「시를 한편도 욀 수 없는 사람」은 56·4%나 되었다. 조사결과에 나타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생활이란「바보상자」라는 TV시청이 고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해방 후 그 숱한 교육제도의 개선과 경제성장이 국민전반의 문화수준을 높이는데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문화가 꽃 피려면 정치와 경제가 문화의 후원자가 되어야 하며 결과적으로는 정치와 경제도「문화의 힘」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문화는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혜택을 보지 못하고 일부의 전유물이 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우리의 모든 문화정책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한국의 문화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면, 그 문화발전은 마땅히 서울과 지방이 함께 참여하고 창조하는 문화풍토를 이루어야 한다. 각 지방이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유지하여 자기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앞으로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필요 불가결한 조건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우리의 문화 정책이 대부분 전시, 과시용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대형의 문화공간 확장에 급급한 나머지 그것을 운영할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그 하드웨어에 담을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너무나 소홀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는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수용에서 오는 갈등현상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하면 마치「놀이」가 전부인양 잘못 생각하고 있고, 이것이 결국오늘날 산업화 사회에서 소비문화를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선 조들은 경제적으로 갈 살려는 생각보다도「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적 생활에 더욱 큰 비중을 두고 살아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외래문화도 저속한 대중문화의 수용에만 급급하지 말고 수준 높은 고급문화 수용에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고 발전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여러 부문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와 경제는 있지만「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치와 경제가 물 흐르듯 제 길을 가려면 역시 국민의 문화적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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