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화술로 대변한 민족 정한|연극 『아리랑』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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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과거 지향적이며 경박한 공연이 판을 치는 가운데 냉철한 현실 응시의 힘찬 작품이 젊은 층을 사로잡고있다. 지난7월 인천에서 창단 되어 현재 신선 극장에서 공연 중인 극단 아리랑의 『아리랑』 (김명곤 작, 조항용 연출)이 바로 그것이다. 극단 이름과 동명의 작품 제목이 함축해주듯이 이에는 민족의 정한과 울분을 토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이 보인다.
실제로 나운규의 저항 시나리오가 근간이 되어 현대적 2인 극으로 재구성된 작품인 것이다. 즉 두 떠돌이 배우가 과거의『아리랑』을 오늘의 곤혹스런 삶과 연결시켜 재현하고 있는 점에서 개화기 이후의 현대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그 극복 의지를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와 분단상황으로 인해 좌절한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는 두 어릿광대는 이 비극이 외세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 의에 인간적 파국의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간다는 이야기다.
김명곤과 박제홍·조항용 트리오는 마당극을 주도했던 신예 연극인들이기 때문에 극술에도 능하고 훈련도 잘 되어 있었다. 따라서 작품 『아리랑』 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제약을 뛰어넘어 민속극과 서사극 방법을 기묘하게 융합시켰기 때문에 분방하고 즉흥성이 강하다. 이러한 장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것은 김명곤·박제홍 듀엣의 만만찮은 창의 실력과 능란한 화술, 그리고 변화무쌍한 연기력으로 인해서다.
그에따라 현실 질타의 비수를 내포하면서도 멋스럽고 흥겹게 진행되기 때문에·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랑』도 마당극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즉 의욕과잉과 도식적 주제가 예술적 가치를 반감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도성이 앞서다보니 주제가 심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극단 아리랑은 앞으로 자기들의 세계관을 밀도 있는 극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유민영<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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