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제로 정국…「찬바람」예고|유 의원 발언파문 어디까지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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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성환 의원의「국시」발언이 몰고 온 먹구름이 정국전체를 뒤덮고 있다. 정국의 수레바퀴는 전도를 예측할 수 없는 내리막길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국회나 학원 가의 상황은 그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가속을 붙게 하여 자칫하면 파국이라는 골짜기로 곧장 내닫게 할지도 모를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우선 16일 민정당이 강행 처리키로 결정한 유 의원 체포 동의요구서의 처리는 정치적 협상의 가능성이 거의 완전히 배제되어 극한대결의 과정만 남기고 있다.
민정당은 15일 하오의 당정협의결과「명분이 뚜렷하므로 정정당당하게」본 회의장에서 표결처리를 강행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필요하다면 경호 권도 발동할 태세다. 유 의원의 문제는 여당의 정치력이 행사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벗어났고 정부의 방침은 확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으로 야당과의 대화라고는 체포동의 처리의 통고 절차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민당 측은 15일 의원총회에서 「의원직을 걸고」이를 저지키로 결정했다. 의원체포 동의는 무기명비밀투표에 부치므로 단상점거·투표함 봉쇄 등과 본 회의장에서의 농성 등 온갖 수단이 모두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표결이 강행되면 여-야의 물리적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어 있고 사태는 더욱 악화 일로를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보다 더욱 근본적 요인은 정국에 대한 여권의 인식과 대처 구상이다. 정부·여당은 대학가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확산되고 있는「용공적 경향」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대에 나붙은 북괴신문보도를 그대로 옮긴 대자보, 대학데모에서의 구호 등을 보면 지금까지의 양상과는 차원을 달리하여 북괴의 주장을 공공연하게 전면에 표출시키는 우려할 만한 사태로 번져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최근 정부대변인의 담화나 정부관계기관의 분석 등을 통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분석이다. 따라서 용공급진 좌경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정리가 불가피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다.
유 의원 발언도 이러한 시각에서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인 것 같다. 이번 유 의원 사건도 말하자면 그와 같은 전면적인 용공급진 좌경세력의 척결에 있어서 오직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여당당직자는『국가가 혼란에 빠지는 위기에 직면하여 국회의 특권만은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민당 측은 이러한 정부측의 조치가 단순히 용공급진세력의 근절로만 그치지 않고 정계의 전체 구조의 변화, 그리고 개헌의 방향 등과도 연결되는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이에 닥쳐오는 찬바람을 감지하고 추위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여당의 유 의원 체포동의 강행처리에 소극적인 저항을 주장할 수도 있다. 또 전체적인 야권의 파탄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사태를 막기 위해 유 의원의 탈당, 자진사퇴 등으로 희생을 축소하자는 의견도 내부적으로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동교동이나 상도동 측은 정국의 초점이 개헌에서 체제시비로 옮겨간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체제시비나 사상 논쟁이 가열되면 결국 정국의 주도권이 정부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유 의원 문제가 일체의 협상이 배제된 채 여야의 격돌로 체포동의 요구가 처리되게 된다면 그 후유증은 엄청날 것이 분명하다. 신민당 내에서는 등원거부·의원직 사퇴를 비롯한 자폭론 등 극한수단이 거론퇴고 이와 함께 책임문제·진로선택 문제 등 당내 불만이 제기되어 한바탕 내부파동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장내 격돌이 치열하게 되든, 국회공전 등의 사태가 장기화되든 이것은 국회는 물론이고 정당을 포함한 전면적인 또 다른 조치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사태를 미리 피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직선제 개헌 쪽으로 방향을 되돌려야 하는 것이 신민당 측의 입장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충돌을 사전 예방하거나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따를 것이다. 사태를 유 의원 개인문제로 좁히려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민정당 측은 신민당과 재야와의 연계를 차단하겠다는 당초의 목표를 관철키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는 등 강경 태세로 밀고 나올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일방적 백기를 요구 받게 되면 야당의 생리는 실력 저지라는 감정적 대응 론 쪽으로 기울 것이 분명하다. 협상방안은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역시 남는 것은 정치권의 파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회해산 등의 얘기가 여당 W족에서 나도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 의원 문제가 수습이 되든 격돌로 끝나든 간에 정부·여당의 강경책이 이 정도에서 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용공 적인 급진 좌경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정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 기본구상이라면 현재의 야권구조로 볼 때 그러한 조치가 불가피하게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야권은 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민당으로서는 재야에 대한 선택을 분명히 해야 하는 궁지에 몰릴 수도 있고 유 의원 사태와 얽혀 당 체제 개편문제, 당의 진로문제 등 이 점점 강력하게 대두될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야 권익 구조개편으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예견되는 때에 여당의 대변인이 정부를 향해 성명을 발표, 『늦기 전에 좌경·용공사상의 제거와 차단』을 촉구한 것은 의미 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성명은 용공세력에 대한 정부측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 같은 조치는 단기적인 처방일수도 있고 장기적인 대책일수도 있다. 정가 일부에서는 정부측이 북괴의 주장이 공공연하게 표출되고 있다고 보는 이런 상황이 가중된다면 이를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교전상태나 그에 준 하는 중대한 비상사대』로 판단하고 헌법57조에 규정된 비상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조심스런 관측을 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정치력의 공백상태가 오고 그것은 야권만이 아니고 여권에도 해당될지도 모른다. 또 그 동안 자율화정책의 흐름 속에 있던 사회 각 분야에도 주름이 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 개헌문제가 맞물리게 되는 경우 그것은 정계재편이라는 구상과 얽혀 움직여 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은 위기 국면을 앞에 두고 여-야가 모두 적절한 제어 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치의 포기일는지도 모르겠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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