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1인자 오른 양학선 "다시 올라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양학선 선수. 천안=김지한 기자

'도마의 신'이 다시 돌아왔다. 양학선(24·수원시청)이 부상에서 회복해 처음 출전한 공식 대회 도마 경기에서 정상에 올랐다.

양학선은 10일 충남 천안 남서울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97회 전국체육대회 기계체조 남자 일반부 도마 결선에서 1, 2차 시기 평균 15.012점을 기록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최고난도 기술 '양1'(도마를 앞으로 짚고 세 바퀴 비틀기), '양2'(도마를 옆으로 짚고 세 바퀴 반 비틀기) 대신 '여2'(도마를 앞으로 짚고 두 바퀴 반 비틀기), '로페즈 트리플'(도마를 옆으로 짚고 세 바퀴 비틀기)을 시도해 1차 시기 15.175점, 2차 시기 14.850점을 기록했다. 2위 박어진(14.462점·포스코건설)에게 0.55점 앞선 성적이었다. 양학선은 링 결선에서는 14.550점을 받으며 2위에 올랐다.

지난 8일 열린 예선에서 양학선은 1·2차 평균 14.675점으로 예선 1위에 올랐다. 당시 경기 후 만난 양학선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기술을 완벽하게 할 수 있으니까 도마 경기에 복귀한건데, 결과를 보곤 창피하다. (착지가 불안했던) 2차 시기에선 자존심이 깨졌다"면서 "예선에서 1위 했다고 만족해선 안 된다. 결승에선 최소한 자존심이라도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당시 양학선은 마루·안마·철봉 등 3개 종목엔 나서지 않았다. 양학선은 "마루 경기는 올해엔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트라우마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체조 도마에서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2011·13 세계선수권 2연패를 거둔 그에게 지난해 3월은 악몽 같았다. 소속팀에서 마루 종목 마무리 훈련을 하기 위해 도움닫기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주저앉았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오른쪽 아킬레스건 완전 파열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선수 생활해서 처음 수술대에 올랐다. 이미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같은 부위를 다친 적이 있었다.

물론 피나는 노력 끝에 기적 같은 회복세를 보였다. 체조 관계자들은 "복귀하는데만 1년 걸릴 것"이라고 봤지만 수술 후 2주 만에 재활을 시작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그러나 끝내 리우 올림픽 출전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마루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 이미지

양학선 선수. 천안=김지한 기자

양학선은 "리우 올림픽만 바라봤다가 아쉬운 일을 겪었다. 올림픽 땐 일부러 TV 생방송도 보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승부욕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라이벌인 북한 간판 리세광(31)이 리우 올림픽에서 결선 평균 15.691점으로 금메달을 딴 뒤 "양학선만 체조를 대표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양학선은 "그 말이 맞긴 하다. 그래도 형이 그런 말을 하니까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긴 했다. 내가 나갔으면 달랐을텐데…"라고 했다. 그는 "동료 선수들이나 코치 선생님들이 모바일 메신저로 '학선이가 갖고 있는 기술만 갖고 나갔으면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며 격려해주셨다. 그 후에 (리세광이 뛰는) 영상을 보고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고 말했다.

아직 양학선의 몸상태가 완벽한 건 아니다. 양학선은 스스로 "마루를 뛰지 못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50%도 안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그는 부상 때문에 처음 수술대에 오른 아픔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이 오늘 좋다가 내일 또 안 좋아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몸 관리를 세심하게 하고 있다"면서 "오전에 병원, 오후에 훈련장만 오가는 일정을 지난 반년 동안 소화하면서 열심히 다시 몸을 만들었다. 다치지 않고 도약대를 뛸 수 있게 돼 걱정이 사라진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미 양학선은 리우 올림픽 직후인 지난 8월말, KBS배 전국대회에서 팔을 사용하는 링 종목에 출전해 경기력을 점검한 적이 있다.

양학선은 스스로 "부상만 없다면 진짜 잘할 자신이 있다. '부상 없는 양학선'이 되는 게 앞으로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벌써 주변에서 리우 올림픽 끝나니까 4년 뒤 도쿄 올림픽 얘기를 많이 한다. 그때면 서른도 안 됐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도 "4년은 금방 간다. 그만큼 지금부터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학선이 해야 할 일은 많다.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리세광이 보유한 기술(뒤로 몸 굽혀 2바퀴 공중 돌고 1바퀴 비틀기)도 터득해야 한다. 앞으로 한 경기 두 차례 시도에서 비틀기 기술만 사용하면 안 되고, 도는 기술도 섞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양학선은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는 "체조는 선수의 이름을 따 기술 명칭이 붙여진다. 양1, 양2처럼 리세광 기술보다 더 난도 높은 기술을 하는 게 내가 해야 할 과제"라면서 "내가 할 것만 잘 하면 된다. 체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더 높이 올라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리우 올림픽 기간이던 지난 8월 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겼다. "다시 올라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잠시 숨을 골랐던 '도마의 신'이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아산=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