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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500호 기획] “개헌 논의할 수 있다”는 정진석 청와대 기류 변화 감지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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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기국회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얼마든지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의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중심제는 한계가 왔다”며 한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와 같이 지난(至難)한 의사결정 구조는 없다. 의사결정 구조를 패스트트랙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얘기를 꺼냈다.

“뉴욕 특파원 간담회에서 정 의장이 ‘개헌은 정진석 의원이 키를 쥐었다’고 하더라. 나는 ‘의원님들 스스로 개헌 논의를 하겠다 하면 막을 방법도, 이유도 없다’고 했다. 다만 개헌 논의 시점이 적절한가에 대해 얘기한 것이고, 정기국회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얼마든지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 평소 독일식 내각제론자인 정 원내대표는 이날도 “독일식 내각제가 지구상 최고의 권력 구조”라고 재차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와 함께 새누리당의 투톱이다. 내각제론자이지만 그동안 개헌 논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지난 7월 17일 제헌절 기념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2년 뒤 제헌절 전엔 새 헌법이 공포되길 바란다”고 말했을 때도 즉각 “개헌의 동력이 없다.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한다 해도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이란 부정적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 그가 ‘정기국회 뒤 개헌 논의 공론화’로 해석되는 발언을 내놓자 정치권의 개헌론자들은 “청와대의 기류 변화를 읽은 것 아니냐”며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블랙홀같이 빠져들 것”(2014년 1월 신년회견),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2016년 4월 편집·보도국장 간담회)며 개헌 논의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당연히 새누리당 친박계 주류들 사이엔 “현실적으로 대선 전 개헌은 어렵다”는 정서가 강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석에선 “노동개혁법 등 처리에 일부 진전이 있을 경우 청와대가 적극적 입장으로 돌아서 개헌 국면을 주도하거나 최소한 개헌 논의에 반대하지 않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정현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학계에서 논의를 시작해 정치권의 합의로 개헌 추진의 방법과 일정을 제시하자”며 예상을 뒤엎고 개헌론을 언급했다. 여기에 정 원내대표까지 나서 개헌론에 불을 붙이는 태도를 보이자 “그들이 청와대와 교감 없이 그런 얘기를 할 사람들이냐. 당연히 사인이 있었을 것”(익명을 원한 당 관계자)이란 주장이 번지고 있다.

한편에선 정 원내대표의 발언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반 총장과 접촉한 인사들에 따르면 국방·외교 등 외치 중심으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더라”고 소개했다. 충청 출신으로 반 총장 영입에 가장 열성적인 정 원내대표의 발언엔 반 총장 측의 기류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또 야권 일부 인사는 ‘야권 내 개헌파를 향한 회유 메시지’로 정 원내대표의 발언을 해석한다.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 무대를 제대로 깔아줄 테니 노동개혁법 등 법안 처리에 협조해달라’는 여당 원내대표로서의 전략적 고려가 담겼다는 것이다.

다목적 포석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 정진석의 한 수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서승욱·이충형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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