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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무죄 선고받은 2000억대 창업 신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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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스타트업에 지원하는 정부의 창업자금 횡령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던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알선수재, 사기, 국고보조금 관리법 위반 등 호 대표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살펴보더라도 더벤처스와 이 회사가 투자한 창업팀의 계약에 불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호 대표가 스타트업계의 상징적 인물인 점을 내세워 5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대가로 29억원 상당의 지분을 불법적으로 받은 혐의가 있다며 기소했다. 호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다국적 영상 플랫폼 회사를 만들어 5년 만에 2000여억원에 매각해 창업 신화를 쓴 주인공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유죄를 자신했던 검찰은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했을 때 벤처업계와 학계에서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스타트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한 막무가내식 법 적용”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엔젤투자협회와 대학교수들까지 나서 호 대표에 대한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청의 주도로 만들어진 팁스(TIPS)를 홍보하고 활성화하려는 명분으로 호 대표를 끌어들였다가 봉변만 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는 우리나라에선 세상을 확 바꿀 만한 벤처기업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풍토에선 미국의 실리콘밸리 같은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요원한 꿈일지도 모를 일이다. 가뜩이나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에인절 투자 규모는 미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러고도 전기차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같은 혁신 기업가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원 선고가 난 뒤 호 대표가 밝힌 것처럼 이번 재판은 기술 창업투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검찰 수사로 위축됐던 벤처업계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 줄 것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