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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입점시켜주겠다" 소상공인 123명 등친 마트사냥꾼들

중앙일보

입력

과일도매업체를 운영하는 A씨(54)는 2014년 말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대형 마트 측이 "200만~300만원 상당의 과일을 납품해 달라"고 했던 것. 이어 물건을 납품하기 시작하자 곧장 통장으로 과일값이 들어왔다. 1개월이 지난 뒤부터는 과일 주문량이 늘어났다. 납품대금도 700만~800만원으로 올라갔다.

이때부터 업체 측은 과일 납품 비용을 일부만 줬다. 800만원 상당의 과일을 납품하면 300만원만 주고 나머지는 다음 납품 때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트가 3개월 만에 폐업을 하면서 A씨는 120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

폐업 직전의 대형 마트를 헐값에 인수한 뒤 중소납품업체들로부터 거액의 물품을 외상으로 받고 도주한 '마트 사냥꾼'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인천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5일 사기 혐의로 마트 사냥꾼 2개 조직, 28명을 적발해 B씨(40)와 C씨(37) 등 4명을 구속하고 2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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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 등 12명은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인천과 안산의 대형마트 2곳을 인수한 뒤 농·축산물과 공산품 납품업자 41명으로부터 총 6억2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받고 대금을 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C씨 등 일당 16명은 2014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서울·경기·충청 지역 대형마트 6곳을 인수한 뒤 납품업자 82명에게 총 9억8000만원의 대금을 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급매물로 나온 대형마크 등을 헐값에 인수한 뒤 ‘바지사장’을 내세워 정상 유통업체인 것처럼 납품업체를 모집했다. 이후 고의로 부도를 내거나 파산을 신청해 폐업한 뒤 도주했다. 납품받은 물품은 헐값에 처분해 현금화 한 뒤 나눠가졌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법원에 파산·면책 신고를 해 채무를 청산했다. 실제로 구속된 D씨는 이런 수법으로 22개 업체에 대한 4억2000만원의 채무를 청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3~7개월 정도 영업을 하면서 초반엔 정상적으로 대금을 결제해 납품업체를 안심시킨 뒤 납품량과 외상을 늘려가는 수법으로 범행을 했다"며 "일부 피해자들은 전 재산을 투입하고 빚까지 얻어 이들 업체에 납품을 하다 파산 위기까지 몰리는 등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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