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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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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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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경제부 부데스크

주식시장에서 악재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손실이 생겨도 규모와 파장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주가가 떨어져도 다시 오를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손실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부각되면 투자 자체를 하기 어렵다.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아직도 헷갈린다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 김영란법 강의를 들었지만 ‘3-5-10 원칙(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법령에 따르면 공직자 등(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포함)은 금품수수가 금지되지만 원활한 직무 수행과 사교·의례에 한해 3-5-10이 허용된다. 사회 상규에 따른 금품도 받을 수 있다. 예외의 범위가 애매했지만 강사로 나온 변호사는 확실한 답을 주지 못했다. 강의 후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애매하면 하지 말고, 오해 살 일 하지 말자”는 것이다.

특정인을 처벌하는 법은 일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조문을 읽고 강의까지 들으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김영란법의 조문과 시행령, 국민권익위의 가이드라인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언론에서 부모가 자녀의 담임선생님에게 5000원짜리 커피 쿠폰을 주는 것이 위법이라고 보도한다. 그렇다면 2500원짜리 캔커피, 1500원짜리 음료수는 사회 상규로 볼 수 없는가. 공직자 등이 3만원 한도에서 ‘사교·의례적 접대’를 받도록 허용하는 것이 정말 괜찮은지도 궁금하다. 만일 접대하는 쪽이 식사·선물 비용을 법인 경비로 처리했다면 이는 스스로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직무 관련성이 없는 일에 법인카드를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27일 대법원도 자체 가이드라인에서 “권익위가 직무 관련성을 너무 넓혀놨다. 이렇게 하면 법이 고무줄처럼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한편으론 권익위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에 대한 불확실성만 높였다. 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대법원 판례인데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권익위 역시 2018년 말까지 시행령 개정을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때까지는 양심껏 해석하고 알아서 몸조심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이 지향하는 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이지, 사람들이 과도한 자기 검열에 빠져 서로를 불신하도록 하는 게 목적은 아니다. 문제는 김영란법이나 시행령을 고치자고 하면 이를 무력화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받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참에 경조사(10만원)나 공식 행사의 식사 정도만 예외로 하고 나머지 3만원(식사), 5만원(선물) 한도를 아예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가. 이 한도 때문에 그 금액까지는 괜찮을 것이란 인식을 불러온다. 대신 국가 사무를 수행하는 민간인(공무수행사인) 같은 불분명한 적용 대상과 직무 관련성의 범위를 명쾌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다.

김 원 배
경제부 부데스크